brunch

인생이라는 철로에 서서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by 박이운

마흔. 기대 수명이 80세였던 시절엔 인생의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나이였으나, 100세 시대가 되고, 120세 시대를 바라보는 현시점에서는 생각보다 아직 갈 길이 먼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기대 수명과는 별개로 마흔이 되었을 때 우리는 어려서 생각했던 마흔이라는 나이에 이뤄야 하는 것들을 이뤄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마흔까지 살아오며 매번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러했듯 힘겨움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음을 느낀다.

'내가 그렇지 뭐.' 라며 자책을 하기도 하고, '내 상황에선 이게 최선이야.' 라며 애써 현실을 외면한 채 순응하는 것이 최선인양 스스로를 세뇌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힘든 상황에서 주저앉아버리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들은 나를 갉아먹으며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게 만들기만 할 뿐이다. 남들보다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이룬 것 없는 것 같고, 뒤쳐진 것 같은 생각만이 가득한 마흔이라는 시점.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을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




개리 비숍은 자신의 저서 '시작의 기술'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철로를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자신이 서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왼쪽은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오른쪽은 내가 살아갈 길을 나타낸다. 당장 우리는 지금 서있는 지점에 큰 벽이 가로막은 것과 같은 힘듦을 느끼며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개리 비숍의 말처럼 철로를 상상하고 살아온 길, 살아갈 길을 차례로 돌아보며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떠올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살아온 길


아주 잠시만 떠올려도 많은 장면들이 숱하게 쏟아진다. 친구나 연인과 겪은 다툼이나 이별로 힘들어했던 경험, 가정에서 또는 학교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아니면 잘못이 없는데도 억울한 일을 당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시험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취업 면접 등에서 떨어져 낙담했던 시기도 있을 것이고, 어렵게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남들은 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나만 사회 부적응자처럼 사회생활을 잘 견디지 못할 것만 같던 시기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떠오른다. 먹고 싶은 것도 맘껏 먹지 못하고 강제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시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학자금 대출이나 집에 갑작스럽게 목돈이 필요하여 돈이 모일만 하면 큰 지출이 생겼던 시절. 돈은 버는 족족 빠져나가기 일쑤라 결혼은커녕 연애하기도 벅찼던 그 시절.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어떠한가? 그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버텨냈고, 살아냈다. 개리 비숍의 말처럼 과거를 돌아보고 다시 현재의 자기 자신을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지금 우리를 막고 있는 현실의 벽은 우리가 지나왔던 인생의 경로에 있던 작은 돌부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살아갈 길


이제 오른쪽으로 끝없이 뻗어있는 철로를 바라보며 앞으로 살아갈 길을 떠올릴 차례다.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그런 내 미래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안 풍경,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나의 모습 등을 떠올리다 인생의 마지막 모습도 떠올리게 된다. 내 마지막 모습은 죽음을 앞두고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모습이 아니었으면 한다. 행복하게 열심히 잘 살았다는 만족감에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나고 싶다. 행복한 미래를 그린다고 해서 과거나 현재처럼 힘든 일은 몇 번이고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결국 버텨내고, 살아낼 것이며, 다시 돌아봤을 때 작은 돌부리에 지나지 않는 일들이라는 것을.




철학가 니체와 작가 수전 케인, 그리고 철로 이야기로 영감을 준 개리 비숍까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나를,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하는 필요성이다. 그 관점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할 수도 있고, 나이가 많고 적음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될 수도 있고, 나와 내가 처한 상황들을 생각하는 관점을 의미할 수도 있다. 관점을 달리하면 나를 가로막고 있는 벽이 작은 돌부리로 변하고, 마흔이라는 나이가 그냥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머무르는 것이 최선인 나이에서 지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가장 젊은 나이로 변하며, 이별이나 사별과 같은 결코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큰 슬픔에서 그 슬픔을 간직한 채로도 앞으로 나아가고 살아갈 수 있다는 힘이 생긴다. 이들이 말하는 관점을 달리한다는 말은 곧 내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말이고, 나 자신을 한 발짝 물러서서 쳐다보고 내려다보며,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큰 범위에서 둘러보게 된다는 말인 것 같다. 나는, 그리고 여러분 모두는 지금까지 힘겨운 인생을 살아낸, 충분히 강한 사람이고 행복한 인생을 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지금 현실에 굴복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인생, 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인생을 살기에 전혀 늦지 않았다. 내 탓, 남 탓하며 현실에 굴복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첫 번째 단계인 관점 달리하기를 시도해 보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철로를 떠올리고 나아갈 힘을 얻어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멈춤, 돌아봄, 나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