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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Mar 25. 2023

[기러기의 일기 1]

생일

잠에서 깬 아내가 눈을 뜨자마자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중국에, 아내는 한국에 있던터라 한 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고,  내가 전화를 받은 오전 8시는 아내가 있는 한국 시간 오전 9시였다. 전날 늦게 잠이든 탓에 늦잠을 잔 아내였고, 잠에서 막 깼다는 것이 전화 너머로 느껴졌다. 급한 일이나 심각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평일 일과 시간에 전화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그래서 놀랐다.


'무슨 일 있어 여보?'


내가 물었다.

아내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무슨 일 있지 오빠. 잘 들어야 돼.'


이윽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려왔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여보의 생일 축하 합니다'


'무슨 일이지?' 하며 다급하게 회사 복도로 뛰쳐나가 전화를 받고 있던 난 아내 노래를 듣자마자 순간 울컥했다. 눈물이 나오다 청소 아주머니와 마주쳐 눈물을 삼켰다. 세상 모든 축복을 나에게 몰아주는 듯한 아내의 노래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구정 연휴를 제외하고는 1년 넘게 떨어져 있는 우리 상황에 가슴이 미어져왔다.


아내의 '우리 사이버 러버 같아.'라는 말에 같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마음 한편이 쓰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한없이 고맙고 또 미안하기만 하다.


떨어져 있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 혼자 겪고 있는 난임 시술로 인한 몸과 마음의 힘듦 때문에 그렇다. 내가 다 대신 겪고, 대신 아프고 싶다. 진심으로.


9주 만에 태아 심장이 멈춰 소파술을 하고, 두 달도 안되어 태반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것이 발견되어 자궁경 시술까지 받은 아내. 아내가 수술, 시술을 받고 나서 나에게 전화를 할 때면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있는 그대로 감정을 표출하고 울어댔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달리 아내는 씩씩했다. 자신의 생일 전날 태반 제거 자궁경 시술을 받았으면서도 오히려 우는 나를 위로했고, 자궁경 시술 후 자궁이 들러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몸 안에 풍선을 삽입하고 나오는 길이었음에도 울지 않았다. 나는 그저 미안하고 아팠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표와 꿈을 가지고 살아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꿈과 목표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들과 비교해 소박할지 모르겠다. 아내와 함께 있는 것, 아이가 태어나면 세 가족이 웃으면서 행복하게 '같이' 지내는 것,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살 수 있는 수익구조와 파이프 라인 만들기다.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 가정에서 자란 나는 그저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농담삼아 던지는 '아버지 뭐 하시노'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내가 창피하기만 했다. 그래서 내 꿈은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다. 소박할지 몰라도 내 입장에서는 정말 뜻대로 되지 않는, 이루기 힘든 꿈이자 목표이다.


2018년 겨울 결혼한 뒤 지금껏 아내와 붙어있었던 시간이 반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이를 갖기로 아내와 결정을 하고 나서는 계속 떨어져 있는 셈이다. 아내와 떨어져 사는 삶, 맘처럼 와주지 않는 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워만 보이는 일들이 왜 내게는 쉬이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그래도 씩씩한 아내를 보며 다시 한번 맘을 다잡고 긍정적인 생각을 품는다. 이번에는 꼭 잘 된다.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다. 아내와 나는 태어난 아이와 함께 행복하고 단란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간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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