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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Mar 26. 2023

[기러기의 일기 2]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최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엄청난 화제다. '너의 이름은'을 통해 올라가기 시작한 한국에서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인지도는 그가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애니메이션 감독 칭호를 붙여줘도 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한국에서는 '너의 이름은'이 아무래도 가장 크게 흥행을 하고 화제가 됐던 작품이지만, 나에게는 '초속 5cm'와 '날씨의 아이'에 더 애착이 간다.



초속 5cm


'초속 5cm'에서 아리고 사무치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내 마음에 불씨를 심어주었다. '초속 5cm'를 본 시기가 아마도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하다 헤어졌던 시기였을 것이다. 이별에 힘겨워하던 난 깊은 슬픔의 늪에 빠진 상태로 슬픈 노래, 슬픈 영화, 슬픈 드라마 등을 일부러 챙겨보며 그 감정에 충실히 아파했다. '초속 5cm'는 그 당시 내게 아내를 향한 사랑을 놓지 않고 잡고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품게 해 준 작품이다. 아내가 이별을 고한 후에 손 편지로 '너를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는 언제나 내가 세계 1위야.'라고 썼을 정도로 아내를 향한 변치 않는 내 마음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었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런 내 마음을 응원해 주었다. 언젠가 다시 아내를 만나서 사랑을 이어갈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여자친구를 엄청 사랑하는 남자를 여자가 매정하게 차버린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지는 않는 법.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연애, 사랑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서는 되는 것이 아닌데, 난 마음만 있었다. 표현할 줄 몰랐고,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도 하지도 않으면서 왜 내 마음을 이리도 몰라주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쌍방이 하는 연애와 사랑을 나는 내 마음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했던 것이다. 아내의 마음을 들여다보지도, 나를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아내의 이별통보는 당연했다.


그렇게 원치 않는 이별을 한 후 아내와 난 2년가량을 떨어져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아내가 나와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하나씩 찾아냈고, 그 원인이 나에게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함께하기 위해 변하기로 결심했다. 쉽지 않았지만 난 변했고, 아내를 찾아가 만났으며, 긴 시간 동안 나의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 증명해 낸 후 다시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 그래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내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는 아내를 알게 됐고, 그 아내와의 이별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했고, 결국 해냈으며,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해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날씨의 아이


'날씨의 아이'는 맑음 소녀 히나와 그녀를 사랑하는 소년 호다카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나에게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히나가 하늘로 사라진 후 호다카가 히나를 찾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가는 모습과 그의 대사 '나는 그저 한 번만 더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거야!'에서, 그리고 아내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스가가 형사반장의 '호다카처럼 그렇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심정을 잘 모르겠네요. 스가 씨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나 역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히나를 한 번만이라도 더 보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뛰어가는 호다카의 모습에 감정이입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내와 이별 후 태평양을 건너 해외로 나갔던 난,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 중국 발령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해 새사람이 되었다. 진정으로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아마도 바라는 마음을 가지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 다음으로 이어지는 행동이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는 것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은 사람, 세상에서 가장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을 내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아내를 떠올리면 미소가 퍼지면서 눈가가 젖어온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기러기 인생이지만, 오늘도 난 호다카처럼 계속 달려 나간다.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매 순간 행복을 느끼며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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