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츠비 Apr 01. 2023

[기러기의 일기 3]

나는 특별하다.

누구도 특별하지 않아.

하지만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단다.

나를 그렇게 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영화 '토스카나'에 나오는 가장 좋아하는 대사다. 이탈리아 출신이면서 덴마크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 셰프 테오(Theo)는 레스토랑을 키우기 위해 초대한 투자자와의 미팅을 망친 후 고향인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향한다. 어릴 적 어머니와 아들을 버리고 식당을 택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들인 테오에게 식당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변호사 연락을 받았을 때 테오는 기쁨이 아닌 분노가 차오름을 느꼈고, 그 감정에 휩싸여 미팅을 망쳐버렸다. 아버지의 유산 따위 필요 없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당장 투자 유치 기회를 날려버린 상황에서 아버지의 식당이라도 팔아 자신의 레스토랑을 키우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으로 어렵사리 분노를 잠재우고 토스카나로 향했다.


아버지의 식당에 도착한 테오는 형편없는 음식과 서비스에 '역시나' 하면서 식당을 얼마에 팔 수 있을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이윽고 어릴 적 아빠의 식당에서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소피아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자신이 지금껏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테오와 소피아는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싹 틔우지만, 소피아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그렇게 테오는 식당을 서둘러 판매한 후 덴마크로 돌아갔다.


덴마크에 돌아온 테오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일같이 음식 퀄리티와 서비스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방식만을 강하게 고집하고 주방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왕으로 군림하던 그였지만, 소피아를 만나고 아버지의 식당의 영향을 받아 유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집을 방문한 어느 날,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사진을 보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그 사진이 자신과 소피아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앞서 소개한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그 길로 소피아를 찾아 떠난다.


영화 '토스카나'는 왜 사람이 사람에게 그토록 중요한지,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고, 사람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알게 해주는 힐링무비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평생을 아버지 보다 뛰어나고 '특별한' 셰프가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주인공은 소피아를 만나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도 아버지가 싫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지병을 갖고 계셨던 아버지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1999년 내 나이 열여섯이던 해 마지막 즈음에 가족을 남겨둔 채 하늘로 가셨다. 아버지의 지병으로 인한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과 엄격한 훈육방식, 자식들에 대한 높은 기대 탓에 또래 아이들과 다른 일상을 살았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당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면서도 어느 정도 해방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나이가 들고서 가물가물한 아버지의 얼굴과 음성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진 적이 몇 번 있지만, 당시엔 임종부터 장례식까지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던 나다. 영화 '토스카나'에서의 테오처럼 나도 아버지를 증오했었는지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의도대로만 살아야 했던 난 그다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남들처럼 단란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내가 겪은 것들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긴 싫었으니까. 테오와 난 이 부분에서 다르다. 테오는 아버지를 이기려고 했고, 난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자 했다. 하지만 소박하기만 한 단란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내 꿈이 이렇게도 힘든 것인 줄 꿈에도 몰랐다.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다. 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지금의 아내와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기만 하다가,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 시작 즈음 연애를 시작했다. 아내는 내가 나를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내만큼 특별한 사람은 없다.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세상 가장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이별도 겪었었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믿음으로 장거리 연애를 극복했고,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다. 내 모든 아픈 과거를 덮어줄 뿐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의 행복만 그리며 살 수 있게 해주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아내이다.


테오의 어머니가 했던 말처럼 나를 특별하게 봐주는 사람을 만나면, 또 그 사람을 내가 특별하게 여긴다면 나와 상대의 존재뿐만 아니라 온 세상과 삶 자체가 특별해진다. 내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부부가 원하는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내는 한국에서 난임 클리닉을 다니고 있고, 난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 단 하나의 꿈인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은 여전히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이자 목표지만,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사람과 함께 헤쳐나가고 있으니 곧 이룰 일만 남은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내는 나를 가장 잘 알고, 항상 나를 응원해 주며, 내가 무엇을 하든 엄청난 지지를 해준다. (물론 잔소리도 가끔..)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아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고, 항상 아내를 응원하며, 아내가 나와 함께 행복함을 느끼고 또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줬기에 우리의 행복한 결말은 머지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그 행복한 장면을 상상하고 미소 지으며 잠들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러기의 일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