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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Apr 02. 2023

[기러기의 일기 4]

어디 갔어, OOO?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은 마리아 셈플의 베스트셀러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다. 영화는 버나뎃의 딸 비의 내레이션과 함께 남극에서 카누를 타고 있는 버나뎃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버나뎃은 무슨 연유로 남극에서 홀로 카누를 타고 있으며,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었을까. 영화는 시작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며 금세 몰입하게 만들었다.


버나뎃은 잘 나가는 천재 건축가이자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유망한 프로그래머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커리어를 포기하게 되고, 두 번의 유산을 겪고 어렵게 낳은 딸 비를 키우는 것에 집중한다. 우리가 아는 많은 천재 아티스트들이 그렇듯, 버나뎃도 조금은 유별스러운 성격(사교적이지 않고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역 사회에서 고립된 생활이 지속됐다. 딸아이의 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선 괴짜로 통했고, 이웃 주민들과는 트러블이 잦았다. 그런 그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들뿐임에도 남편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버나뎃에 대한 불만들로 인해 그녀를 감싸주기는 커녕 스트레스를 받아 지쳐갔고, 결국 큰 사건이 터진 후 정신과 상담을 통해 버나뎃을 요양소에 보내려는 계획을 하기에 이른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환경에서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던 버나뎃은 요양소 이야기를 듣자마자 기겁을 했고, 결국 가족 여행으로 계획했다가 요양소 이슈로 취소하기로 결정한 남극 여행을 혼자 도망치듯 떠난 것이다. 남극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무작정 나아가던 버나뎃은 마침내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고, 그녀를 찾아 남극으로 온 가족과 상봉하는 행복한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버나뎃의 별난 성격 탓에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그 사건 사고들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지면서 코미디 영화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웃기려는 영화가 아닌 진정성 있는 힐링 영화다. 천재로 이름을 날리던 한 여성 아티스트가 결혼, 유산, 출산, 육아 등을 위해 커리어를 등진 후 이어진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금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영화 '어디 갔어, 버나뎃'. 이 영화를 보면서 나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만, 그보다는 아내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아내는 버나뎃과 닮은 구석이 많다. 별난 성격이라는 말이 아니라, 상황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내도 나와의 결혼으로 시작해야 했던 해외 생활로 인해 경력 단절을 감수해야 했고, 나 말고는 가족과 친구 하나 없는 해외 생활을 하며 무료하고 우울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게다가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갖기로 결정을 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난임 시술 등으로 인해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작년 말 어렵게 생긴 아이가 올해 초 아내 뱃속에서 심장이 멎었을 때 누구보다 힘들고 아팠을 아내를 생각하면 감정이 복받치고 눈물이 차오른다. 태아와 아기집을 빼내는 소파술을 나 없이 홀로 한국에서 받아야 했던 아내. 커리어와 가족, 친구들을 뒤로한 채 나와 결혼했기에 남들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아내의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하다. 아내가 감당하고 있는 아픔과 슬픔 모두 내가 대신 겪어주고 싶다.


나는 디지털 노매드를 꿈꾼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 후 반 이상의 기간을 아내와 떨어져 살았기에 더는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것이고, 항상 가족과 붙어있고 싶기 때문이다. 아내가 소파술을 받는 동안에도 난 일 때문에 같이 슬퍼하거나 같이 울지 못했다. 무엇보다 같이 있어주지 못한 나 자신이, 지금의 삶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버나뎃이 다시 행복한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 길을 찾아냈던 것처럼 나도 그 길을 찾아 나섰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내가 디지털 노매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아내 곁에서, 미래의 아이 곁에서 계속 있어주는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고, 또한 아내에게 육아보다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자기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아내가 있기에 내가 있고, 아내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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