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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Apr 05. 2023

[기러기의 일기 5]

메멘토 모리

작년 말과 올해 초는 말 그대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하늘이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3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찾아온 우리 부부의 첫 아이 '꼬미(태명)'. 아내가 초음파 사진을 보내줄 때마다 조금씩 커가는 꼬미를 보며 행복했고, 또 꼬미가 심장소리를 들려준 날부터는 매일같이 기차소리처럼 우렁차게 뛰는 심장소리를 듣다가 미소를 띤 채 잠에 들곤 했다.


중국에서의 일 특성상 긴 구정 연휴 직전은 언제나 밤낮없이, 주말 없이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쁜데, 그래도 구정 연휴에 아내를 보러, 그리고 꼬미의 심장 소리를 직접 들으러 한국에 들어갈 생각에 들떠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들려온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난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몇 번이나 피가 비쳤던 아내는 그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가서 검사를 받곤 했는데, 매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꼬미는 버텨주고 있었고, 아기집도, 꼬미도 잘 크고 있었으며, 심장소리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병원으로 향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이미 울먹이고 있었고, 아내 스스로도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꼬미는 9주 만에 심장이 멎었고, 그렇게 우리는 꼬미를 하늘로 보내주었다.


회사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일은 일이기에 해내야 했고, 어렵게 정신줄을 부여잡고 일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오면 불도 켜지 않은 채 고독과 슬픔에 휩싸여 지냈다. 아내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더 힘들어할 것을 알기에 괜찮은 척하며 아내를 위로했지만, 난 괜찮지 않았다. 괜찮을 수가 없었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나 없이 모든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혼자 견뎌내야 하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가슴은 그렇게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소파술(유산) 역시 내가 한국을 들어가기 직전에 해야 했어서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장인어른과 처제가 아내와 같이 동행해 주었기에 어느 정도 마음은 놓였지만, 누구보다 내가 옆에 있어주고 싶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아내는 오히려 씩씩했고, 슬퍼하고 미안해하는 날 위로했다. 언제나처럼.


난 우리 꼬미를 잊을 수가 없고 지울 수가 없다. 아내 이야기를 들으면 병원에서 만나 단톡방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정모도 갖는 다른 병원 언니 동생들 중에 여러 번 유산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명을 잃는 것도 이렇게 마음이 산산조각 나고 찢어질 듯 아픈데, 어떻게 여러 번을 겪고도 마음을 다잡고 계속해나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내는 꼬미를 보내줘야 하고, 놔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다음에 올 아이에게도 좋은 거라고 말이다. 언젠가는 내가 꼬미를 보내주고 놔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생각하며 오롯이 아내와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에 집중하던 난 2주간의 연휴와 휴가를 마치고 또다시 홀로 중국으로 복귀했다.


아내와 한국에서 함께한 2주 동안 결심한 것이 있다면 다시 힘을 내기로 한 것이었다. 혼자가 힘들고, 떨어져 있는 것이 힘들고, 아내를 혼자 둔 것이 마음 아프고, 아내 혼자 감당해야 할 것들에 미안함이 앞섰지만, 내가 힘을 내야 아내도 힘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다시 마음을 잡았고, 동기부여를 얻고자 오래도록 덮어두었던 책 비터 스위트와 이번에 새로 사 온 책 마흔에 읽는 니체를 펼쳤다.


수전 케인의 비터 스위트는 슬프고, 아프고,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이겨내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들을 고스란히 가슴에 남겨두고, 끌어안은 채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며, 또 충분히 그렇게 안고 살아가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아픔과 슬픔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을 보며 난 꼬미를 계속 안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비터 스위트에서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아직도 내게 울림을 주고 살아갈 힘을 준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들도 있으며, 모든 상처가 치유되어야 하는 건 아님을 서로에게 상기시켜 주는 것 말고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기억해줘야 해요. 사별의 슬픔이 여러 가지 감정을 일으킨다고요. 슬플 수도 행복할 수도 있고, 또 그러기 마련이라고요. 같은 해나 같은 주에 심지어 같은 숨을 내쉬는 순간에도 슬픔과 사랑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요. 우리는 기억해야 해요. 사별의 슬픔을 겪는 사람이 다시 웃고, 다시 미소 짓게 될 거라는 걸요. 앞으로 나아갈 테지만 그렇다고 훌훌 털고 나아간다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요.'


그리고 마흔에 읽는 니체에서 니체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과 삶은 원래 고통을 수반하기에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태도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 부분도 내게 힘을 주었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다. 먼 미래에 가서 영생을 살 수 있는 기술이 나올지는 몰라도,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생명은 분명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죽음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세상에 나와 빛을 보지도 못하고 고작 9주 만에 하늘로 돌아간 꼬미. 그런 꼬미를 내가 보내지 못하고 있던 이유는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꼬미가 9주 동안 심장소리를 들려주며 나와 아내에게 살아가는 의미와 행복을 선사해 주었던 것을 기억하면 꼬미가 우리 곁을 너무 빨리 떠났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이 어느 정도 반감된다.


메멘토 모리. 고대 로마인들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이 말을 했다. 이 말의 의미는 살아가면서 지금 당장 죽을 것처럼 이 순간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내게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기억하고 간직한 채 살아가라는 의미로. 난 꼬미를 보내지 않았다. 사별의 슬픔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힘을 내서 행복하게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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