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활짝 피어날 거예요
퇴근 후 군밤을 사러가는 발걸음이 너무나도 가벼웠다. 맛있게 먹을 아내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문득 군밤 집 바로 옆 꽃집에 눈이 갔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꽃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꽃은 샛노란, 어쩌면 망고보다도 진한 노랑노랑 한 얼굴을 뽐내고 있는 해바라기였다. 군밤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3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해바라기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며칠 전 아내는 모바일 쇼핑몰에서 찾은 아마추어 취미용 그리기 세트 상품의 캡처 사진을 내게 보내며 물었다.
'오빠 나 이거 사서 해볼까 하는데 사도 돼? 해바라기 이쁘지? 해바라기 그림이 있으면 돈이 들어온다나 봐!'
취미며 해바라기며 돈이며......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많이 우울해하는 아내의 우울함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그 모습이, 그 마음이, 그 힘듦이 내 마음에 날아들어 하늘을 맴도는 새들처럼 원을 그리며 돌다가 하나씩 내리 꽂혔다. 아팠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생각해보지 않았을 타지 생활.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던 아내는 나를 만나고 결혼해서 아는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는 이곳에 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래서 아내의 우울함이 깊어지는 날이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고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살았다면, 내 프러포즈에 응하지 않고 아내 자신의 생각대로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했다면 아내가 우울해질 이유가 없었을 것 같았다. 내가 그 원인을 제공한 것만 같았고, 그게 사실이라는 생각에 더 미안했다.
1년 가까이 노력했음에도 생기지 않는 아이도 아내의 우울함을 더해주고 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조급함도 더해져 매월 일정 시기가 되어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실망감도 커져만 갔고, 이번 달도 그 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아내의 우울함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는 난 일상에서의 소소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생각해내고 기뻐할 아내를 상상하고 실행하곤 한다. 회사 동료들이 군밤을 나눠먹는 모습을 보고 아내도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가 잠시나마 우울함을 내려놓고 맛있게 군밤을 까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군밤 가게로 향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해바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이내 가슴이 울렸다. 무언가 찡한 것이 올라왔다. 듣고 있던 노래 때문일까. 귓가에 흘러나오던 권진아의 '꽃말'이라는 노래의 가사도 한몫했으리라.
꽃집 종업원에게 아직 활짝 피지 않은 해바라기로 달라고 부탁했다. 주먹 정도 크기, 그리고 아직 꽃잎들을 오므리고 있는 송이들로 골랐다. 이미 활짝 피어있는 해바라기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나와 아내의 모습, 우리 인생처럼 아직은 활짝 피지 않았지만 곧 다가올 그날을 위해 열심히 수분과 빛을 흡수하고 있는, 아직은 미완의 모습이 더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고른 다섯 송이의 해바라기를 꽃다발로 만들어 내게 건네주는 꽃집 종업원의 말에 또 한 번 가슴이 울렸다.
'곧 활짝 피어날 거예요'
해바라기의 꽃말은 Pride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는 아내의 자존감은 낮아질 대로 낮아져 있다.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났을 때, 노랑이 짙어지고 그 자태를 뽐낼 때 아내의 자존감도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