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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녀 가셨다.

by 박이운


낮잠을 자는데 아버지께서 오셨다.


마치 아이가 된 듯 신이 나서 야구 이야기를 했다.


'저는 투심 (two-seam fastball) 그립을 이렇게 잡거든요? 다르게 잡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이렇게 잡아요. 이게 잘 들어가면 슬라이더보다 각이 예리하게 떨어지거든요. 그럼 정말 짜릿해요. 하지만 그것도 벌써 5년도 넘은 이야기네요. 야구 안 한 지 오래됐어요. 저도 이제 곧 마흔이에요. 세월 빠르죠? 저랑 아빠가 딱 서른 살 차이 나잖아요. 아시죠? 근데 제가 벌써 마흔이에요. 참나. 하하하. 아이도 가지려고 노력 중인데.. 쉽지 않네요.'


한참을 신이 나서 떠들다가 문득 아빠 표정이 궁금해 고개를 들어 아빠 얼굴을 봤다. 인자하게 웃고 계셨다. '그래. 그렇구나. 너도 이제 아빠가 되겠구나.' 하시는 듯한 표정으로.

그리고 이내 잠에서 깼다. 꿈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속에 못한 이야기가 참 많았나 보다. 하긴. 23년이구나. 먼저 가신지. 왜 하필 야구 얘기였을까.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았을 텐데..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야구는 나와 아빠의 거의 유일한 공통분모였다. 아빠 손을 잡고 처음 간 잠실 야구장. 그렇게 야구를 알고, 어린이 회원이 되고, 해질 대로 해진 글러브를 물려받으면서도 너무 기뻐서 뛰어나가 동네 친구들과 매일같이 해가 떨어질 때까지 야구를 했다. 날이 갈수록 건강은 악화되셨지만, 어린 나는 아빠와 캐치볼을 하고 싶어서 같이 놀아달라고 많이 졸랐다. 힘드셨을 텐데도 아빤 컨디션이 조금 좋은 날엔 같이 나가 캐치볼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면 며칠간 어깨가 쑤신다며 조금 힘들어하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 쑤신 정도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빠와의 기억이 야구처럼 좋은 것들로만 가득 차 있지는 않다. 하지만 보고 싶긴 한가보다. 아이처럼 내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고 싶은가 보다. 나 이렇게 지냈다고. 이렇게나 컸다고. 이제 나도 아빠가 될 거라고.

그게 아니면 여쭤보고 싶었나 보다. 어떻게 지금 내 나이에, 그 힘든 몸으로, 그 많은 빚을 갚아내며, 11살, 9살 두 아이를 키우고 계셨는지. 나는 아직도 내가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는지, 능력은 되는지, 그릇은 충분히 큰지 의문이 든다고. 그냥 낳으면 나도 크면서 아이도 키우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알아서 크는 것인지.

하지만 여쭤보지 못했다. 아빠 앞에서 난 여전히 아이 같았다. 그저 내 이야기만 해대는 아이. 그리고 아빤 여전히 묵묵히 듣고 계셨다. 다 알고 계시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버지께서 그렇게 다녀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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