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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May 07. 2023

[기러기의 일기 11]

익숙함과 결별하기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중략-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이 말은 가수 윤하 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에 나오는 가사 중 일부이다. 역주행 신화를 기록하며 정말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은 노래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깊고 심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노래다.


살아오면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던 시기를 돌아보면 '익숙함과의 결별'이 있었고, 그 쉽지 않았던 결정 인해 지금의 내 삶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인생에서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 시기에 난 항상 10년 뒤를 떠올렸다. 한국에서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해외로의 이직을 선택할 때도 그랬다. 10년 뒤 이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렸고, 당시 팀장님이셨던 분의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내가 떠올린 내 모습과 느껴지는 나의 분위기가 전혀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퇴사와 이직을 결심했다.


하지만 퇴사와 이직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 쉬었던 것만은 아니다. 단순히 회사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는 것이었기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었기에 오랜 시간 심사숙고했다. 익숙한 곳, 익숙한 사람들, 고향, 가족을 모두 뒤로한 채 떠나야 했던 서른 살의 난 결국 익숙함과의 결별을 택했고 그렇게 지금의 내 인생을 만들어냈다. (당시 연인이었던 지금의 아내와의 이별도 한국을 떠나기로 한 결정에 한몫을 했었다.)


태평양을 건너갔던 10년 전의 난 지금의 아내와 다시 만나기 위해 조금이라도 아내와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중국 발령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렇게 2015년에 중국으로 와 아내를 다시 만났다. 3년여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에 성공한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와의 헤어짐, 해외 이직, 중국행 등 모든 내 여정이 아내와의 결혼이라는 엔딩을 만들어 낸 중요한 사건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인시절 아내를 향한 내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었지만, 아내와의 연애를 이어가고 결혼에 골인하기에는 나 자신이 턱없이 부족했고, 부족한 난 아내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내와 헤어지고 한국을 떠난 뒤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나를 뒤돌아보고 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중국으로 오고 난 후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아내를 찾아가 변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증명했으며 그렇게 다시 아내의 마음을 얻었다. 이별과 해외 이직이 없었다면 지금의 결과는 내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을 결과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지금,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지 10년이 지나 마흔이 된 이 시점에, 난 다시 한번 10년 후를 떠올리며 또 한 번 익숙함과의 결별을 준비한다. 해외(중국) 생활, 난임 클리닉에 다니며 2세를 계획하고 있는 아내와 나, 더 이상 회사 조직에 묶여 다른 사람의 주머니와 배를 불려주기만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시 한번 익숙함과 결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흔이 된 난 차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중국 지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에 언뜻 보면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10년 뒤 익숙한 이곳에서, 익숙한 회사에서 지사장이 되어 많은 연봉과 혜택을 누리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10년 뒤 내 모습을 떠올렸을 때 10년 전 퇴사와 이직을 결심했을 때처럼 행복하지 않은 나와 내 가족의 모습이 보였고, 서른 살이었던 때보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익숙함과의 결별을 통해 내 인생, 내 가족의 인생을 내 손으로 직접 꾸려가고자 한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지만

노력은 우리에게 정답이 아니라서


그렇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인생 트랙에서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인생의 모습에는 닿을 수 없음을 알기에 이 트랙에서 살고자 노력하기보다 다른 트랙으로 옮겨가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옮겨간 인생의 트랙 마지막 결승선에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행복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블로그, 티스토리, 브런치, 유튜브 등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또 진행하면서 매일매일 나와 아내가 도달해 있을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또 꿈꾼다. 세상은 원래부터가 공정하거나 공평한 세상이 아니다. 하지만 단 하나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있다. 시간. 난 이 시간을 악착같이 활용해서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뤄내고자 한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중략-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새로운 길모퉁이, 출발선에 선 마흔의 나. 과거 내 선택, 결정들로 인해 만들어진 내 인생에 감사인사와 작별을 고하고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나아가려 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꿈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


 마흔이라는 나이에, 또 한 번 익숙함과의 결별을 통한 '기러기 탈출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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