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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May 21. 2023

[기러기의 일기 12]

힘든 시기에 위로가 되어준 영화, 북 오브 러브

14살 때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에 떠밀리듯 미국 LA로 온 다니엘, 그리고 마카오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빚더미에 신음하며 카지노 딜러로 일하는 지아오. 이 둘은 스스로를 각각 선인장과 새우라고 표현한다. 어린 나이에 홀로 타국으로 와 항상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가가지도, 다가오게 만들지도 않으며 살아온 다니엘은 몸에 가시를 두르고 있는 선인장이다. 지아오는 도박으로 인한 아버지의 빚 때문에 힘들게 카지노 딜러로 일하며 빚을 갚아 나가지만, 매번 한탕을 노리다 실패로 끝나는 자신의 인생이 드넓은 바다에서 누구에게 먹히거나 잡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새우와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심 어린 편지를 주고받던 선인장과 새우는 가시를 거둔 선인장, 단단한 껍질을 깨 자신을 드러낸 새우가 되어 서로에게 위안과 위로가 되어주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출처 : 알라딘 인터넷 서점

영화 북 오브 러브의 모티브가 된 책은 채링 크로스 84번지라는 편지 형식의 해외 에세이다. 채링 크로스 84번지는 영국 런던의 헌책방 거리로 유명한 곳인데, 미국의 작가 헬렌 한프와 채링 크로스 84번지에서 마크스&코라는 헌책방 직원인 프랭크가 헬렌 한프의 고서적을 찾는다는 편지 한 통을 시작으로 인연을 맺은 뒤 이들이 20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애틋한 우정을 쌓아가는 내용이 담겨있다.


북 오브 러브에서는 이 채링 크로스 84번지라는 책을 판타지 요소처럼 활용해서 LA와 마카오에 있는 선인장과 새우가 서로를 비난하는 관계로 시작해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고 나아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나 자신은 가시를 두른 선인장이면서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잡히거나 먹혀도 이상하지 않은 새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 오브 러브에서의 다니엘과 지아오의 모습을 난 다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내 본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고, 가까이 두지도 다가가지도 않았던 난 선인장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또한 항상 생각만 많고 배움과 실행의지가 떨어졌던 난 이 험난한 바다와 같은 삶에서 새우와 같이 미약한 존재였을 것이다.


블로그, 스마트 스토어, 유튜브 등 기러기 탈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호기롭게 시작한 것들이 부침을 겪으면서 계속 나아갈 동력을 얻지 못해 다소 주춤한 한 주를 보내던 중 영화 북 오브 러브의 선인장과 새우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보. 지금껏 운동도 잘 안 하고 툭하면 의자에서 뜨개질이나 해서 나보다 건강도 안 좋지.

이런 말 듣기 싫겠지만, 내가 보기엔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갈 것 같아.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나쁘진 않아.

당신이란 여자는 내가 먼저 떠나면 혼자 집안일도 다 처리 못 할 거고, 게다가 눈물도 많지.

여든이 다 돼서도 툭하면 잘 울잖아. 나 떠나고 당신 우는 꼴을 어떻게 봐.

여보. 죽기 전에 병에 걸리면 고통스럽잖아. 그럼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

하지만 걱정 마. 당신이 아파도 내가 지켜 줄 테니까. 당신 먼저 가면 거기서 날 기다려 줘.

그게 싫으면 성격 좋은 남자 찾아서 만나. 다 이해할 테니. 그리고 이렇게 하자.

묘비 위에 자리를 비워 놨다가 내가 세상을 뜨면 당신 옆에 내 이름을 새기게 할게.


선인장(다니엘)이 라스 베거스에서 80대 노부부를 결혼시켜 주는 장면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전한 가슴 찡하고 진실된 사랑의 말은 아내를 향한 내 사랑을 상기시켜 주었고,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1분 1초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은 내 소중한 꿈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가족이 함께 있는 곳이 집이지.


그리고 또 하나,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후 선인장(다니엘)에게 집을 넘겨주려는 할머니가 하는 말이 쭈그리고 앉아서 땅을 바라보고 있을 겨를이 없다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듯했다. 가족이 있는, 아내가 있는 곳이 내 집이며,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별은 사방이 어두워야 잘 보여요.

죽음을 마주하는 용기란 말이 와닿네요.

죽음도 두렵지 않으면 넘어가지 못할 난관이란 없죠.


돈 많은 부자의 유혹에 흔들려 그를 따라 라스 베거스까지 따라갔던 새우(지아오)는 뭐든 쉽게 한탕으로 이루려고 했던 자신을 뉘우치며 힘겨웠던 세상으로부터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치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이 대사가 내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니체의 말을 끄집어냈고, 다시는 이 말을 잊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인장과 새우가 돌고 돌아 런던의 채링 크로스 84번지에서 만나기까지의 여정이 방향을 잃고 잠시 방황하던 나를 다시 내 꿈과 목표로 나아가는 길 위로 올려놓아 주었으니, 다시 뒤를 돌아보거나 주저앉아 고개를 떨궈 땅을 보지 않고 계속 앞만 보고 나아가려 한다. 


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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