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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Jul 02. 2023

[기러기 남편의 난임일기 4]

두 달 만에 아내를 만나고 왔습니다.

5월 29일에 배아 이식을 해서 이식한 세 개의 배아에 각각 '오', '이', '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착상이 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 지난 시술 후 나와 아내는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마음을 다독이며 다음 시술을 위한 난자 채취 단계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아내가 다음 단계에 들어가기 전 중국에 2주 정도 와서 서로 힐링을 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비자와 비행기표를 알아봤지만, 한국에서 중국으로 새로 비자를 받아 출국할 경우 지문 등록을 해야 하는데 최소 2주를 대기해야 한다고 해서 아내의 중국 방문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중국 단오절 기간인 6월 22일에서 6월 24일까지 비자 발급이 필요 없는 다른 장소에서 만나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두 군데서 각자 출발하다 보니 시간을 맞추기가 매우 애매했다. 결국 비용을 제일 아낄 수 있으면서 시간을 맞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한국을 방문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우린 오랜만에 여행을 떠났다.




인천에 내려 나를 마중 나온 아내를 보자마자 반가움과 애틋함이 겹쳐 번쩍 들어 올리고 안아줬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던 과거의 나였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런 행동을 감히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지만, 마흔이 된 지금의 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보다 나와 아내와 우리가 더 중요했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아내가 너무 가벼웠다. 깃털처럼. 마음고생을 한 탓에 잘 먹지 못한 것일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아내 손을 잡고 차를 타고 우리의 목적지인 강화로 향했다.




강화와 석모도를 여행하는 동안 다행히도 날씨가 너무 좋았다. 강화 도착 당일엔 낙조 맛집으로 꼽히는 아내가 고른 펜션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곁들인 바비큐를 구워 먹으며 행복을 만끽했고, 이튿날엔 강화 맛집 오픈런과 석모도 보문사와 해수온천,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차례로 방문하며 힐링을 했다. 셋째 날엔 펜션을 나와 공항이 가까운 을왕리 주변 호텔로 이동하면서 브런치 카페에 들러 맛있는 식사와 기분 좋은 담소를 나눴으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며 오랜만에 영화관 데이트도 했다. 날씨도 좋고, 일몰도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었던 만족스웠던 여행인데, 무엇보다도 아내와 1분 1초를 붙어있을 수 있는 나날들이었기에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 같다.


< 숙소 일몰 타임랩스 >




너무 행복하고 완벽한 시간들을 아내와 함께 보내다 보니 어느덧 또다시 헤어짐의 시간이 가까워졌다. 매번 겪으면서도 이 순간이 가장 힘들다. god의 노래 '거짓말'의 가사처럼 입으로는 '잘 가.'라는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가지 마.'를 외치고 있었다. 아내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입국수속 줄을 서서 연신 뒤를 돌아보는 나에게 계속 손을 흔들며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난임과 떨어져 산다는 것이 가져다준 것은 세상 어느 부부에게도 뒤지지 않을 애틋함과 돈독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힐링 여행을 마무리하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함께 있고 싶은 마음으로 중무장을 했다. 나도 아내도 그렇게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힘을 내기로 했다. 서로가 함께일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잘 아니까.


힘내자 여보.


행복하자 여보.


내 아내가 되어줘서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려줘서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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