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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츠비 Aug 05. 2023

[기러기 남편의 난임일기 6]

드디어 채취 당일. 결과는요?

아내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채취 당일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채취 며칠 전 이사를 준비하던 아내가 갑자기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는 연락을 해왔고, 이튿날 생각보다 많은 양의 출혈로 병원 진료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진료와 초음파 검사 결과는 '생리'로 나왔고, 생리 과정에서 그동안 힘들게 키워온 난포들이 터지거나 배출이 되었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아내에게 괜찮을 거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 나였지만, 나 스스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취하러 병원을 향하는 아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입으로는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결과를 확인하고 마음이 아플 아내 생각에 괜스레 미안하고 아팠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했고, 시술실에 들어간 아내는 마취와 함께 연락이 끊겼다. 약 한 시간 뒤 '깼어' 하며 메시지를 보내온 아내. 깨자마자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불안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동안 난자채취 성공을 위해 건강하게 생활한다고 먹고 싶은 것 많이 못 먹었으니 점심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해 보라며 아내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은 나였지만 마취에서 막 깨어난 아내는 아직 점심 생각이 없었나 보다.


그리고 30분 뒤. 아내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자신의 이름과 채취 난자 개수가 쓰여있는 서류의 한 귀퉁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평소 채취됐던 난자 개수보다 두 배 가량 많은 숫자에 난 입을 다물지 못했고, 아내도 나도 기뻐서 방방 뛰었다. 물론 메신저 상에서.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의 걱정. 개수는 많지만 성숙 난자 개수가 많이 나와야 한다며 다시 걱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걱정도 기우였다. 10개가 넘는 성숙 난자 개수에 아내와 난 다시 한번 메신저 상에서 난리 부르스를 췄다. 그리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 아주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간 먹지 못했던 피자를 먹고 단잠을 잤다.


정말 너무 기뻤다는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기쁨이다. 즐겁고 행복했다. 오래간만에. 아내도 정말 기뻤던지 잘 자라는 인사에 내일도 오늘만큼 기쁜 하루를 보내자고 회답했다. 너무 기특하고 장한 우리 아내. 옆에 있었으면 끌어안고 난리 났을 텐데. 그래도 아내가 난임 클리닉을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몇 안 되는 행복한 날이었으니 그걸로 만족하려 한다.


물론 아직 많은 절차가 남아있다. 일단 난자 채취를 준비하면서 생리를 했기 때문에 이번엔 신선 이식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동결 가능한 성숙 난자가 많이 나와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기록만 놓고 보면 아내의 동결 난자 기록은 좋지 않다. 그래서 난자 채취 개수가 많음에도, 성숙 난자 개수가 많음에도 아내는 여전히 걱정을 하고 있다. 동결이 나와야 하고, 그중에 등급 좋은 성숙 난자가 많아야 한다. 난임은 정말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도전 같다. 하지만 아내는 이겨내고 있다. 우린 그렇게 조금씩 부모가 되는 결승선에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나는 믿는다. 아내를 닮은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말이다.


여보, 조금만 더 힘내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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