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은 천연 철분제가 아닐까?

어린 날의 오만, 달리며 배운 겸손

by 박이운

대략 12~13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스무 살, 대학교 신입생 시절부터 10년 넘게 이어온 사회인 야구.

단과대 야구 동아리에서 야구의 ‘야’ 자도 모르고 시작했던 나는,
어느덧 동아리 OB팀, 동네 야구팀, 회사 야구팀에서
주전 유격수와 투수, 중심타선을 맡는 주축 선수가 되어 있었다.

그중 동네 야구팀에는 단순히 야구가 좋아서 합류한 형들이 많았다.
지금의 나보다 어리거나 지금의 내 또래였던 사람들이었다.

서른 살 무렵이었던 나는
젊음과 10년간의 경험으로 실력 면에서 그들보다 한참 앞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상당히 오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연습인지 시합인지가 끝나고
다 함께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식사를 마친 뒤, 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연습과 시합을 어떻게 병행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던 중,
대다수의 의견은 "회비를 더 걷더라도 전문가에게 레슨을 받자"는 쪽으로 기울어갔다.

당시 리그 안에서 개인 기록 상위권이던 난
지금 받는 레슨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회비를 추가로 내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차라리 실전 시합을 더 자주 뛰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대학교 신입생 때 야구공 잡는 법도 모르고 팀에 들어가
연습과 시합에서 실수만 하던 시절의 나에게

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팀이 강해지려면 너희 실력이 올라와야 해.

안 그러면 시합에 같이 뛸 수 없어.
팀 훈련이나 시합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연습이나 레슨을 통해서라도 실력을 끌어올려야 해.
그래야 함께 즐겁게 운동할 수 있어.
안 그러면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만 줄 뿐이야.
당연히 즐겁지도 않고."


그때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개인 실력을 스스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후 이어진 여름방학 동안
나는 개인 운동과 훈련을 미친 듯이 했고,
2학기부터는 주전 멤버로 뛰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 중국집에서
내가 들었던 선배의 말을 거의 그대로 옮겨 말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분위기는 싸늘했다.

아무도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눈치.
어색한 정적만이 이어졌다.

당시의 나는 내가 틀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정적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야구 좀 한다고, 어린놈이 참 쉽게도 말하네."


아마 그렇게 느꼈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얼굴이 벌게질 만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아, 다시 돌아가서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러닝을 하면서 왜 갑자기 이 장면이 떠올랐을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마흔을 넘긴 지금,

나는 그때 함께 야구를 했던 형들의 나이보다도 많은 나이가 되었다.

어느 정도 철이 들었을 수도 있다.

철이 든다는 건,
철없던 시절의 나를 부끄럽게 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러닝을 시작하면서, 소셜 미디어도 함께 시작했다.
야구를 할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교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 중에는 과거의 나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자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조언과,
진심 어린 응원만 있을 뿐이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누구보다 친절하게 알려준다.

러닝 크루에서도 가장 못 뛰는 사람의 페이스에 기꺼이 맞춰 함께 달린다.

입문자가 잘 못 뛰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누구도 초보자의 실력을 재촉하거나 깔보지 않는다.

그저 같은 러너라는 동질감과 소속감이 있을 뿐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운동을 기준으로 구분한다면,

잘하면서 재는 사람

잘 하지만 겸손한 사람

보통인 사람

못하면서 말만 앞서는 사람

못하지만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


과거 중국집에서의 나는 '잘하면서 재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이제는 아니다.

'못하지만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이고 싶다.

다시는 과거의 오만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그럴 나이도, 이제는 지났다.


지금이라도 러닝을 하며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철이 들 수 있어서 다행이다.


러닝을 시작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