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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Sep 20. 2023

'자기혁명' 북리뷰 Chapter 2 - 상위 가치

자기 혁명 - 박경철


자기 혁명


2편은 '가치관'에 대한 리뷰. 지난 8월 한 달간 밥을 먹으면서도,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다.


"삶의 목적은 무엇이고, 나의 가치관은 무엇일까."


그러던 와중 '자기 혁명'에서 고민과 상응하는 주제를 발견하였다. '나'라는 정의에서부터 선택과 가치 지향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모색해 보았다.




실제 우리는 늘 ’ 누군가’로 규정된 채 살고 있다. 이를테면 가족관계에서는 아버지나 아들딸로, 사회적으로는 국민 혹은 시민으로, 회사에서는 직책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의 친구나 동료로 살아간다. 관계는 우리를 수십, 수백 가지의 속성의 틀로 재단하고 있으며 이것을 피할 도리는 없다.  

-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흔히 본인의 신분과 소속으로 답한다. 그리고 신분과 소속이 밝힐 수 있는 대답이 비교적 안정감 있게 느껴진다. 결국 '당신은 누구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탄생한다. 어쩌면 '나'란 존재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없이 정의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들도 어쩌면 이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피라미드의 좀 더 상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직업이나 지위, 학벌, 재산 정도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면 진짜 나는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고, 잃어버린 미아가 되는 것이다.

- 100억 원의 자산가가 되는 것, 교수가 되는 것. 이전에 피상적으로 설정해 놓았던 삶의 목표들이었다. 책에서 언급한 대로 이러한 목표들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피라미드의 상위칸으로 진입하기 위한 욕망 중 하나일 뿐이었다. 삶의 목표라기보다 '욕망'이라고 정의하는 것 올바른 표현이었다. 욕망으로 나를 정의하다 보니 끊임없이 흔들렸다. '100억 원을 벌려면 교수를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교수의 삶이 생각보다 좋아 보이지 않는데?' '교수가 되려면 지방 대학병원이라도 갈 수 있을까?' 결국 '나'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해 떠오르는 고민들이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직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삶의 모든 선택을 그것에 의거해해 나가는 것이다. 가치 기준 아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온전히 노력하며 뚜벅뚜벅 걸어간다면 모든 것은 일직선에 놓인다. 이때 걸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걸어간 길에서 도달한 마지막 지점, 그것이 나의 성취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 삶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욕망보다 목표, 그 상위의 가치가 필요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삶이 끝날 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를 떠올릴 때 무심코 나온 답은 '남을 위한 삶'이었다. 그간 읽었던 자기 계발서에서 나온 대답인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며 살아야 할지, 그리고 왜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도 찾기 어려웠다.   

- 고명환 작가의 강연에서 어렴풋이 그 해답을 찾았다. 세상살이 무엇하나 사람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사소한 물건 하나조차 사람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을 위해 쓰인다. 돈을 받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혹은 그 이상의 만족을 상대에게 주어야 하며, 정신적 행복과 사랑의 실천은 사람과사람 관계 안에서 극대화된다. 더불어 장기판에서 훈수를 둘 때가 더 창의적인 것처럼, 제 3자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위한 조언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다.   

- '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사람은 창의적이고 생산적일 때 극도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는 나의 욕망을 채우기보다 상대방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켜 줄 때 실현된다. 마치 시험 1등을 한 것보다, 이 소식을 부모님께 알리는 그 순간이 더 행복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남을 위한다는 목표조차 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역설적인 결론이 나오지만, 어쩌면 이로서 '나와 남을 분리시킬 수 없다.'라는 전율이 흐르는 깨달음을 얻었다.   

- 더불어 유능함을 펼칠 수 있는 전문 분야와, 지속할 수 있는 관심사가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야 했다. 어떤 대상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그 연결 고리 안에 있었다.   



가치 지향은 내면의 평화를 가리킨다.  

- 욕망이 아닌 그 상위 가치를 설정하면 맞닥뜨리는 일들과 내리는 선택들이 동일선상에 놓인다. 일관성 있는 사건과 선택은 하나의 목적, 하나의 가치를 지향하게 된다. '나'를 정의하는 목표와 선택은 때로는 육체적 고통을 동반하겠지만, 결국은 내면의 평화를 이루어준다.   

- 이전 '선택을 앞두고 떠올리는 가치관'을 포스팅했다. 당시에 설정한 선택의 기준은 선택지의 이해관계, 득실이 개입되지 않았다. 선택을 더 현명하게 내리기 위한 상위 가치는 '양심'이었다. 양심이 허용하고, 몸보다 마음이 편한 선택이 옳다는 가치관은 비교적 현명한 선택들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모든 방황에는 의미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민하며 방황하고 노력하는 것은 바쁜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계속 방황하며 노력하는 것, 주저앉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실존이고 나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 어쩌면 이따금씩 찾아오는 슬럼프와 방황 덕분에 지금까지 한 걸음씩 나아온 것일 수 있다. 항상 이별 후 관계를 되돌아보고 성장하듯 말이다. 친동생의 결혼과 파견의 연속으로 변화가 많은 7, 8월이었다. 가족의 결혼으로 촉발된 가치관에 대한 고민은 거취가 불분명했던 나의 여름을 잠식했고, 짧은 방황 후 선선해진 9월에는 여유를 되찾았다. 덕분에 조금은 더 선명해진 삶의 가치와 의미로 맞이하는 듀크(Duke)에서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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