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본인의 눈높이에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는 고명환 작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사실 10년 전 군 시절에도 읽었다. 당시 대학생 필독서 목록에 있었다. 필독서라고 해서 읽었지만 그다지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책은 구매했었지만 밑줄 하나 긋지 않고 후임에게 건네주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이지만 작가가 실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고, 조르바 역시 실존 인물이었다고 한다. 1946년에 출간되어 거의 80년 동안 읽히고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세대가 지나더라도 공통된 가치에 대한 메시지가 작품의 곳곳에 숨어있었다.
공자 가라사대,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복을 구한다. 그러나 복은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던가. 지당한 말씀! 따라서 모든 사람에겐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뜻이겠네. 내 사랑하는 제자이자 스승이여, 이즈음의 내 행복도 그렇다네. 나는 불안스레 내 행복을 재고 또 잰다네. 그러면 그 순간의 내 키를 알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자네도 알겠지만 사람의 키란 늘 같은 게 아니라서 말일세.
슬픔이 그렇듯 행복도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행복이 주어진다. 가끔은 이만큼 행복해도 되는지 반문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떨 때는 작은 행복을 행복이라고 인지조차 못할 때가 있다. 행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넓히고,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키를 높인다면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한 가지 위안이자 경고는, '사람의 키는 늘 같은 것이 아니다'라는 마지막 문구였다. 끊임없이 본인을 되돌아 보고 재단해야 하는 이유였다.
모든 문제가 일을 어정쩡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을 박을 때도 한 번에 제대로 때려 박는 식으로 해나가면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들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최근 들어 더 와닿는 문구였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대충 했던 일들은 보람도, 결과물도 없었다. 어정쩡하게 하느니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상황과 이유에 불문하고 본인의 역량 것 화끈하게 해야 한다. 어정쩡함이 남기는 건 결국 아쉬움과 의미 없는 시간이다.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들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로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냅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점심시간 직원 식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식사를 한다. 같은 메뉴를 받아, 같은 공간에서 먹은 후 본인의 위치로 돌아간다. 그리고 같은 메뉴의 결과물들은 제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환자와의 싸움에 섭취한 열량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열량으로 논문을 쓰는 사람도 있다. 나의 에너지는 어디에 써야 할지, 그리고 '신을 만들어내는 혹자' 또는 적어도 중간 정도의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에너지를 써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했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없어요. 가버린 겁니다. 마을에 미남 구인이 하나 들어왔는데 같이 내뺀 거지요. 끝난 겁니다. 내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습디다. 그러나 그놈의 상처는 잘도 아뭅디다. 빨강, 노랑, 검정 천 조각을 굵은 실로 요리 꿰매고 조리 꿰맨 돛을 보셨을 게요. 아무리 사나운 폭풍우에도 찢어지지 않아요. 내 가슴도 그것 비슷합니다. 구멍이 뿡뿡 뚫어져 조각조각 갖다 기웠지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튼튼하다. 구멍들을 매울 수 있는 빨강, 노랑, 검정 천 조각들은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고, 생각보다 굵은 실로 꿰매어진다. 그리고 수없이 꿰매진 마음은 차츰 더 거센 폭풍에도 대적할 수 있다. 상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지금껏 꿰매진 경험과 주변에 놓인 천 조각과 굵은 실 때문이다.
평소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다가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이는 책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10년 전과 지금의 느낀 바는 완전히 달랐다. 본인의 상황에 빗대어, 오히려 더 깊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해주었다. 10년이 지난 40대에 다시 읽게 된다면 어떤 리뷰를 남기게 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