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외과의사 Dec 23. 2023

34. 곁에 두고 읽는 니체 - 사이토 다카시

상대의 장점을 봐야 하는 이유

곁에 두고 읽는 니체 - 사이토 다카시




책을 읽다 보면 대개 본인의 관심사가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번 <곁에 두고 읽는 니체>에서는 관계 대목이었다. 이직을 하는 것과 비슷한 이 시점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으면 좋을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칭송한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우수한, 혹은 동등한 친구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붓다도 이런 말에 동의했지만, 만약 그런 친구를 얻을 수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라고 말했다.>

 -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에 나오는 말이다. 만인을 포용하라는 주장이 어울릴 법한 붓다가 동의했다는 점에서 의아했다. 자신보다 우수한, 혹은 동등한 사람과 친구를 하라는 말은 내 기준에서는 정 없고 차가운 말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은 대화가 재밌고, 배울 점이 있으며,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추억을 함께 간직한 친구들과의 시간도 소중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술과 함께이거나 비교적 이따금씩이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상대의 장점을 잘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상대방에게서 자신보다 우수한 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 친구를 맺을 수 있는 관계의 폭이 넓어진다.

친구를 자신보다 동등하게, 또는 더 높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상대방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붓다가 동의하는 바는 선택적으로 친구를 하라는 말이 아닌, 친구라면 상대를 존중하라는 말일 수도 있겠다. 나의 수준을 높이고, 상대의 장점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니체는 인간관계에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니체에게 있어 우정이란 독립적으로 살아갈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나눠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만큼 인간관계에 까다로운 니체였기에 평생 변변한 친구조차 없이 말 그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았던 것이다.>

 -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때 사랑을 시작하라고들 한다. 우정도 마찬가지다. 독립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때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온전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지는 순간 나의 기분과 감정의 주도권은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나도 상대방도 원하지 않는 관계가 될 뿐이다.



<진정한 우정은 두 사람 사이에 생각의 범위나 방향의 저울추가 엇비슷해야 한다. 함께 웃고, 함께 울으며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다.>

 - 최근 몇 년간 나의 관계를 돌아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변했다.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이 달라졌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한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비의료계 친구이더라도 본인의 직업을 대하는 자세가 비슷한 사람과는 같은 의료계 친구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취미가 다르더라도 여가 시간이 본인에게 가지는 의미가 비슷한 사람과는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 줄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생각의 범위나 방향의 저울추가 비슷할 때, 공감하는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진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 우정이 형성된다.



<인생의 중대한 시점에서 서로 응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니체였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고귀한 친구를 원하면서도 끝내 누구와도 우정 다운 우정을 나눌 수 없었다. 니체가 유독 '친구'를 주제로 하는 잠언을 많이 남긴 것은 그에게 진정한 친구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니체도 '에르빈 로데'라는 한때 가까웠던 친구가 있었다. 니체가 처음 임용되었을 때 가장 가까이서 지지를 해준 친구였으며, 니체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고 평가받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에르빈 로데도 니체 인생의 후반부에서는 그 비중이 줄어들었다.

책에서는 끝내 누구와도 우정 다운 우정을 나누지 못했다고 평가했지만, '에르빈 로데'도 니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준 친구이다. 니체에게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셈이다. 지나간 인연을 시절 인연으로 칭하듯, 인생의 한 시점에서 서로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친구는 '그 시절'에 소중하고 진정한 친구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지나간 연인도, 지금은 연락이 끊긴 옛 친구도 모두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들 중 한 명인 셈이다.





'관계 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SNS와 메신저로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다. 카톡 알람이 없더라도 카톡창을 켜보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라도 올린 날이면 몇 명이나, 어떤 사람들이 내 스토리를 보았는지 몇 분마다 확인한다. 나로서 온전하지 않을 때 이런 관계 중독은 더욱 크게 나를 잠식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관계력을 기르고, 더 좋은 사람들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으며, 맺은 관계를 소중히 여겨야겠다. 더불어 상대를 바라볼 때 장점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33.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