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수술방은 무균의 공간이자, 폐쇄적인 공간이다. 특히 보호자에게 수술방 입구를 표시하는 빨간 선은 마치 형체가 없는 벽처럼 한 발짝을 넘지 못하게 만든다. 수술복을 입은 사람만, 수술 모자와 마스크를 쓴 사람만이 특권처럼 자유롭게 그 공간을 침입한다.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는 '본인의 세계'에서 가장 낯선 공간이 아닐까. 가끔 수술을 앞두고 수술방 입구에 있는 환자들 눈을 마주치면 그 긴장감이 찰나의 순간에 생생히 전달된다.
이런 수술방을 출입한 지는 벌써 6년째. 이 기간 중 매일 같이 수술방에 들어가는 생활은 이제 1년 남짓 되었다. 외과를 선택한 덕분에 남들은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할 배 속을 들여다보고, 합법적으로 사람의 몸에 칼을 긋고 있다. 가끔은 수술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특권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길어지는 수술에 육체적인 피로도도 있지만, 그만큼 정신적인 보상도 있다. 무탈한 수술의 마무리와 조금씩 느는 수술 실력이 그 보상 중 하나다. 하지만 매번 이런 정신적인 보상이 뒤따르진 않는다. 갑작스러운 이벤트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대장암으로 간 전이까지 된 환자였다. 30대의 젊은 환자였지만 4기였다. 항암을 미리 하고 난 후 수술하게 된 케이스였다. 워낙 수술을 잘하는 교수님과 함께여서 별로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든든했다. 예상대로 교수님은 피 한번 내지 않고 대장을 절제하셨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대장 파트 교수님이 나가시고 간 파트 교수님을 기다리는 와중, 수술 텐트 건너편이 시끄러워졌다. 갑자기 마취과가 분주해진 것이다. 환자의 산소 분압을 측정하는 모니터가 나오지 않았다. 체내에 산소 공급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채로 5분이면 뇌 손상이 초래된다. 다시 산소가 공급된다 하더라도 일부 장애가 수반될 수도 있다. 수술과는 별개로 더 긴박한 상황이었다.
수술방 전체에 CPR 방송이 울렸고, 각 방의 모든 마취과 선생님들이 10번 방으로 모여들었다. 그 조그만 방에 20-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찼다. 가슴 왼쪽의 폐음이 들리지 않자 바로 흉부외과가 들어왔다. 긴장성 기흉이 의심되었고, 흉부외과 선생님은 바로 가슴에 바늘부터 꽂았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단 장면이었다. 그제야 환자의 산소 분압 수치가 올라갔다. 다행히 환자는 일부 자발호흡이 돌아왔으나 수술을 더는 진행할 수 없었다. 원인 모를 기흉이 발생했지만, 마취과 선생님들과 흉부외과 선생님들 덕분에 환자는 살 수 있었다. 한 것도 없는 내가 괜히 녹초가 되어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수술방을 나왔다.
느닷없는 CPR 방송에 병원 모든 사람들이 이 소식을 알고 있었다. 사실 몇 년에 한 번씩 일어날까 말까 한 이벤트여서 무슨 일인지 궁금할 법도 했다. 다음날 회진에서 마주친 교수님은 빠른 걸음으로 병동을 오가는 와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외과 의사는 오늘도 무사히를 항상 기도해야 해."
정년을 몇 년 앞두지 않으신, 거의 30년을 넘는 기간을 수술하신 교수님이셨다. 그 오랜 기간을 무사히 수술하시고 지금의 자리에 있으신 교수님이었지만 예고치 않은 이벤트에서 자유롭지 않으셨다. 바이탈과의 숙명이기도 한가 보다. 생각보다 무거운 짐을 지면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교수님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특권처럼 수술방을 출입했고, 특권처럼 사람의 몸을 열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지는 못했다. 항상 보조의 칸에 내 이름을 올렸고, 집도의 칸에는 교수님이 계셨다. 교수님이 그 무게를 대신 짊어주신 것이었다. 올라갈수록 필요한 능력은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담담함'일 수도 있겠다. 곧 있으면 전공의가 끝난다. 교수님의 보호 아래도 곧 있으면 없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 남지 않는 기간이지만 더 많이 질문하고, 더 많이 배우는 기간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