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럼과 뉴욕은 전혀 다른 도시였다. 도착 후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었던 듀럼과 다르게 뉴욕은 사람들이 빼곡했다. 지하철을 나오자마자 활기가 가득했다. 말 그대로 온갖 사람들이 거리를 바쁘게 오갔다. 정신없는 거리 사이로 숏팬츠 차림의 러너(Runner)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 전체가 살아있었다.
말로만 듣던 마천루는 상상을 초월했다. 일 차선 도로 하나를 마주 보고 있는 빌딩들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었다. 고개를 한참 뒤로 젖혀야 빌딩 꼭대기를 볼 수 있었다. 빌딩 꼭대기까지는 사진 한 장으로 담을 수 없었다. 빼곡한 블럭 안에서 어떻게 이런 빌딩을 올렸는지 의문만 가득했다. 숙소까지 30분을 걸으면서 32인치 캐리어가 무거운지 몰랐다. 감탄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눈앞엔 프렌즈에서 보기만 했던 뉴요커들이 지나다녔고, 고개를 들면 마천루에 압도되었다. 건물마다 성조기가 펄럭였다. 이제야 진짜 미국에 온 듯했다.
여태 많은 도시를 여행했지만 이만큼 역동적인 도시는 없었다. 좁은 도로에서는 차와 사람이 함께 움직였다. 신호등은 참고용에 불과했다. 무단행단이 즐비했다. 신호를 지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 사이로 오히려 사람들이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차가운 뉴요커들의 표정과는 다르게 그들의 몸에는 양보가 베여있었다. 가까이 스치기만 해도 "Sorry" "My bad"가 자동적으로 나왔다. 역설적이게도 바쁨 사이 여유가 느껴졌다. 뉴욕에 도착한 지 30분 만에 관광객이 아닌 이 도시의 일원이 되고 싶어졌다,
뉴욕의 첫인상이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고층 빌딩 입구에는 홈리스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비 오는 거리의 홈리스들을 무시하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지하철은 악취가 가득했다. 뜨거운 바람 사이로 대소변 냄새가 올라왔다. 건물과 건물 사이 틈 없이 빼곡히 차있는 블럭을 걷다 보면 답답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맨해튼 한가운데에 있는 센트럴 파크는 빌딩 숲인 뉴욕에서 진짜 숲이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센트럴 파크마저 없었더라면 뉴욕의 삭막함은 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매력적이었다. 3박 4일간 뉴욕에 머무르면서 세상의 중심에 온 듯했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를 품고 있는 뉴욕이지만, 세상의 중심이라고 느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 세계의 모든 인종이 모인 도시가 뉴욕이었다. 관광객들은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오갔고 국적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뉴욕에서 일하고 있었다. 서울은 많고 많은, 작은 도시들 중 하나였다.
세상은 넓었다. 말 그대로 시야가 확장되었다. 자기 계발서 백 권보다 단 하루의 뉴욕이 내게 더 큰 동기부여를 선물해 주었다. 영어의 중요성은 너무나 컸고, 글로벌 무대는 광활했다. 동시에 살아갈 이유는 너무나 충분했다. 다양한 국적인 사람들과 얘기해보아야 하고,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보아야 했다. 더 풍부한 경험을 쌓고, 풍부해진 경험을 전달해야 했다. 미래에 다시 방문할 뉴욕은 여행지가 아니라, 아마 살아볼 도시가 되지 않을까.
(뉴욕을 방문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다녀온 직후 하루종일 영어만 들었던 10월과는 다르게 지금은 또다시 자기 전 의미 없는 유튜브 쇼츠가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쓰던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반성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