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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Sep 13. 2024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각자는 각자의 고충을 안고 산다.



간 이식을 받은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60세 여자 환자가 입원했다. 수술 후 간 수치가 올라 입원한 케이스였다. 노랗게 뜬 환자의 두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입원하자마자 CT부터 찍었다. 방사선의 힘을 빌려 들여다본 환자의 간은 이식 후 제자리를 잡았던 간이 아니었다. 간이 땡땡 부어있었다. 원래 조영제를 쓰지 않은 영상에서는 혈관이 잘 안 보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환자의 간에 위치한 혈관은 마치 조영제를 쓰지 않아도 선명하게 잘 보였다. 이전 교수님이 설명해 주셨던 급성 알코올성 간염의 전형적인 영상이었다. 알코올성 간염에서는 지방의 축적, 염증 반응으로 인해 간세포로 이뤄져 있는 실질이 주변 혈관보다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이는 게 특징이었다.


그래도 확신할 순 없었다. 간 이식 수술을 한 지 두 달 만에 다시 술을 마신다는 게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전 수술 당시 입원했던 환자의 모습을 기억했다. 환자는 막내딸이 기증을 해주었다. 함께 설명을 드렸던 기억이 생생했다. 수술 후 경과도 좋았다. 회진 시에는 서로 안부를 물어보면서 딸과의 관계도 돈독해 보였다. 수술 전 터질 것 같았던 환자의 배는 딸의 간을 기증받은 뒤엔 마치 정상인처럼 홀쭉해진 채 퇴원했다. 퇴원일에는 친척들이 찾아와 함께 퇴원했다. 가족의 울타리가 두터운 모습이었다. 모범생처럼 별 탈 없이 집으로 돌아간 환자라 갑자기 간 기능이 안 좋아진 데에는 이유가 필요했다.


CT 영상을 확인한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환자의 병실로 향했다.

"음주하셨어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환자는 짧게 대답했다. "아니요."

뭔가 이상했다. "영상이 술 마신 사람들의 간과 너무 똑같아서요. 진짜 안 드셨어요?"

환자는 눈을 피하며 다시 답했다. "안 먹었어요."

머릿속에 의심이 떠올랐지만, 더 추궁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한약이나 달인 물 같은 건요? 혹시 드신 거 없으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 " 환자는 짧게 답했다.


환자가 누운 채 고개를 돌리자 방 안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뭔가 놓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병실을 나서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되돌아갔다. 이번에는 혼자 병실로 들어갔다. 그저 1:1로 대화하면 달라질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제대로 말씀해 주셔야 치료 방향을 결정할 수 있어요. 정말 안 드셨어요?" 나는 환자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환자는 잠시 눈을 깜빡이며 침묵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조금 먹었어요."

"얼마나요?" 차분하게 되물었다.

"5일 동안, 하루 2병씩.."


그제야 겨우 말씀을 해주셨다. 환자의 고백을 듣는 순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쓸쓸함이 밀려왔다. 조금씩 대화가 시작되었고 이전 수술 당시 입원 때는 알지 못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환자의 목덜미에는 단순히 넘어져서 생기기 어려운 멍이 여러 개 있었고,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오래 입원을 원하지도 않았다. 이후 사회복지사님을 연결하면서 더 알게 된 사실은 화목해 보였던 가족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환자의 집은 전세 3000만 원짜리 빌라의 반지하 단칸방이었다. 수술 후 딸과 함께 살고 있지 않았고, 아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었다. 애초에 알코올성 간경화로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 친척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고 한다. 이번 입원도, 수술 후 다시 술을 마셨다는 사실에 인간 대접도 못 받고 있다고 했다.


수술 당시 경과가 워낙 좋아 특별히 자주 찾아뵙진 않았다. 병원에선 오히려 의사를 자주 못 볼수록 회복을 잘하고 있는 거란 말은 사실이다. 한 발 떨어져 보았던 환자의 가족은 보통의 화목한 가정이었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입원을 통해 CT 마냥 지나치게 자세히 들여다본 환자의 삶은 그간의 고충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겉으로는 수술 후 잘 회복한 환자였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술 문제와 가족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은 사실이었다.


병원에서 마주하는 환자들의 고통과 다르지 않게, 우리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고충을 안고 산다. 지난 1년간 말없이 매달 원하는 대로 머리를 잘라주던 동네의 헤어 디자이너님은 세련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어느 날 말을 트고 대화가 시작되자 그의 고충이 드러났다. 몇 년째 낫지 않는 무릎 통증에 단순히 서있는 것도 힘들어했다. 매일 짝다리를 짚다 보니 골반이 틀어졌고 어깨까지 아파와 하루하루를 통증 속에서 살고 있었다. 대화 없이 머리를 잘랐던 지난 1년 동안은 건강히 본업에 충실한, 세련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속 사정을 알고 나니 안쓰러운 청년 중 한 명이 되었다.


병원의 환자도, 동네의 헤어 디자이너도 겉으로는 평온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들의 삶은 문제들로 가득했다. 각자는 각자의 고충을 안고 살아간다. 나만 특별히 더 건강해야 하는 것도, 더 안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저마다의 이벤트를 감내하며 아무 일도 없는 척 담담히 살아내는 것일 뿐이다. 결국 내 삶이 유난히 더 불행하다고 느낄 필요도, 누구의 삶을 유난히 더 부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가까이서 보면 모두 다 연약한 개인일 뿐이었다. 다만 가끔씩은 내 삶을 타인의 삶을 바라보듯, 오히려 내가 나를 멀리서 보아야 비로소 인생이라는 희극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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