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맞이하는 평일 휴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찾아온 휴일은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기분을 낼 겸 밖으로 나돌던 오후, 병원에서 온 문자 알람이 울렸다. 중환자실 뇌사자가 발생했다는 안내 문자였다. 익숙한 내용이지만 매번 올 때마다 어떤 환자인지, 어떤 장기를 쓰는지 눈을 크게 뜨고 읽는다. 보통 본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하는 경우 신장 이식의 1순위는 그동안 본원에서 추적 관찰하던 말기 신장병 환자이다. 신장 이식 수술이 오늘이나 내일 중에 예정되었다는 뜻이었다. 응급수술을 예고해 주는 문자는 휴일의 여유를 순식간에 앗아갔다.
다행히 수술 예정일은 26일이었다. 휴일이 지나고 다음날, 원래도 수술을 하는 날이었다. 조금 더 늦게 퇴근하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뇌사자 안내 문자의 알람 간격이 점차 줄어들더니 수술 일정이 앞당겨진다는 연락이 왔다. 뇌사자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었다.
뇌사자의 생명은 보통 기계와 약물로 간신히 유지된다. 하지만 고농도의 약물이 혈액순환을 방해해 장기에 산소와 영양 공급이 끊기면 장기가 썩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를 NOMI(nonocclusive mesenteric infarction)라고 한다. 노미(NOMI)가 발생하면 장들은 기능을 상실한 채 부풀어 오르다 터지기도 한다. 결국 장기들이 손상되며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뇌사자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유가족은 장기 기증을 결정했지만, NOMI의 진행 속도를 고려하면 시간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장기 적출 수술이 12시간 앞당겨져 크리스마스 자정으로 예정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저녁은 빨리 마무리를 해야 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패딩을 꺼내 든 채 자야 할 시간에 집을 나왔다. 자정에 뇌사자 수술을 시작하면, 수혜자의 신장이식은 새벽 4시쯤 시작. 밤새 수술을 하고 26일 첫 수술을 연달아 들어가야 하는 일정이 예상되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스트레스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수술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다음날 저녁 퇴근길에 녹초가 되어 있을 내 모습이었다. 피곤에 절어 겨우 집에 도착하는 모습이 선했다. 한밤중에 수술을 하게 된 배경은 이해되었지만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심적 부담감은 어쩔 수 없었다. 터덜터덜 병원에 도착하자 신장 이식 수혜자도 입원 수속을 밟고 있었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와 준비를 마친 후, 수혜자에게 이식 수술에 대해 설명했다.
크리스마스 자정에 입원한 신장 이식 수혜자는 중년 남성이었다. 설명을 듣는 내내 얼빠진 표정이었다. 갑작스럽게 준비되는 수술에 긴장한 것인지, 아니면 새 신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인지 알 수 없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수혜자에게 빠뜨리지 않았던 설명은 뇌사자의 상태였다. 뇌사자의 장기 상태가 불량해 혹시나 모를 이식 취소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혜자와 보호자인 아들, 부자를 뒤로하고 수술방으로 내려갔다. 노미(NOMI)가 진행된 뇌사자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배가 열자마자 복수가 밀려 나왔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소장들이 마치 답답함을 토해내듯 배 위로 솟아올랐다. 멍든 것처럼 푸르스름한 장기들 사이로 암모니아 냄새가 퍼졌다. 이내 역한 똥 냄새가 수술실을 채웠다. 들여다본 뱃속에는 이미 쓸 수 없을 만큼 변색된 장기들만 남아 있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신장뿐 아니라 간도 기증할 수 없었다. 새벽에 예정되었던 이식 수술은 취소되었다.
의료인의 윤리에 어긋날 수 있으나, 사실 암모니아 냄새를 맡았던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을 자고 내일 첫 수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다. 새벽 내내 이어질 수술이 취소됐다는 사실은 피로를 한꺼번에 내몰아 주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을 수혜자에게 표현할 수는 없었다. 교수님과 함께 감정을 배제한 채, 뇌사자의 장기 상태 불량으로 이식 수술을 진행할 수 없음을 알렸다. 미리 말해두었던 탓인지 환자는 덤덤히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리곤 환자는 퇴원 준비를 하였고, 나도 서둘러 퇴근 준비를 마쳤다. 잠시라도 자고 출근을 하고 싶었다.
병원을 나서기 전 스치듯 보인 환자의 침대에 우연히 눈길이 머물렀다. 가까이 가니 환자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울고 있었다. 50대 중년 남성이 병실에서 숨죽이며 울고 있었다. 이식 수술이 취소된 아쉬움이 원인이었다. 다음번에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며 위로를 건네곤 서둘러 병실을 떠났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리로 돌아가 환자의 기록을 다시 열어보았다. 알고 보니 환자는 무려 12년을 신장 이식을 기다린 환자였다. 만성 신장병으로 투석을 하며 보낸 세월이 12년이 넘었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환자는 투석 혈관이 막혀 수십 번은 더 병원을 들락이었다. 혈액 투석은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주 3회 투석 병원에 들러 4시간씩 투석을 한다. 낮 시간에만 문을 여는 병원 특성상 월수금 또는 화목토 낮에는 꼬박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 일상적인 업무를 본다거나, 어떤 회사에 취직하는 것조차 어렵다. 또한 투석기계가 신장 기능을 온전히 대체해 줄 수는 없다. 고혈압과 전해질 이상으로 오는 전신 저림과 이상 증세는 덤이다. 환자는 가장 활발히 일할 30-40대를 투석과 함께 보낸 셈이었다.
새벽 2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춥지도 않았다. 이식 수술이 취소된 순간 내심 안도하며 기뻐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게는 익숙한 응급 수술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달랐다. 막힌 투석 혈관을 뚫기를 수십 번, 12년을 기다려 온 그에게 이번 수술은 지긋지긋한 투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자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홀가분했던 마음은 금세 사라졌다. 소리 죽여 울던 환자의 모습이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수술과 환자가 생각하는 수술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