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연말 결산, 2026 새해 목표 설정
또 한 해가 지났다. 상대성 이론을 따른다는 시간에 의하면 올 한 해도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관악산을 오르면서 시작했던 작년 1월 1일은 알게 모르게 한 해를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고, 장장 12개월을 꾸역꾸역 이겨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어김없이 다음날은 찾아왔다. 좋건 싫건 간에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다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은 온전히 나에게 달렸었다.
멘탈 트레이닝
2025년 올해의 키워드는 멘탈 트레이닝이다. 돌아보니 그릇의 크기를 넓히고 있었다. 그릇이란 개념으로 포장한 이유는 그만큼 감내해야 했던 시련이 길었고, 깊었기 때문이다. 2024년 2월부터 시작된 시련은 2025년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을 겪기 전까진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간이 언제였냐고 물어보았을 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인생에서 큰 굴곡이 없었다. 있었다면 누구나 치열하게 공부했을 입시 정도였을까. 굴곡 없는 인생을 자랑인 양 얘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고, 언제까지나 건강할 사람처럼 자발적으로 몸을 혹사했다. 알게 모르게 올라오던 오만이 자리를 잡을 때쯤 시련은 시작되었다.
2024년 초입부터 줄기차게 아팠다. 운동하다 생긴 사고는 연쇄적인 근골격계 문제를 일으켰고, 생활패턴의 변화는 몸의 면역체계를 먹통 시켰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건강 이슈는 한 해로 부족했다. 2024년보다 어느 정도 호전되었지만 2025년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좋아하던 운동을 더는 하지 못했다. 13년 동안 하루만 공백이 생겨도 아쉬워하며 운동을 했던 사람에게 더는 운동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어마어마한 상실감을 안겨주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산책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고, 수영으로 유산소를 대체하였다. 재활로 시작하게 된 필라테스는 최소한의 근력과 체형을 유지시켜 주었다.
13년간 피지컬 트레이닝을 했었다면, 지난 2년간은 그에 버금가는 멘탈 트레이닝을 했다. 불확실성이 얼마나 무서운 개념인지 알게 되었고, 우울과 불안이 얼마나 사람의 일상을 잠식하고 좀먹는지 몸소 깨달았다. 타인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었고, 감당해 내야 할 사람은 오롯이 나 혼자였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었다. 불안 속에서 담담함과 안도감을 찾는 법을 알게 되면서 잔잔한 일상의 위대함을 인지했다. 삶을 회의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긍정적인 시각을 유지했다.
얼마 전 청첩장 모임에서의 한 대화 주제였다. "요즘 무엇을 할 때 재미를 느끼느냐" 다시 말하자면 삶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요소가 있느냔 물음이었다. 모두들 한 가지씩 답을 하였다. 러닝과 발레, 연애, 직장에서의 성장. 제각각 한 가지씩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란 자문을 해보았다. 대답은 아니었다. 특정 행위에 재미를 느끼기보다 전반적인 삶의 잔잔함에 만족하고 있었다. 업무적인 배움과 동료들과의 관계, 일의 전후로 하는 자기 계발 행위들이 불편하지 않았다. 큰 재미는 없었을지 몰라도 지루한 삶은 아니었다. 즐거움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곧 공허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도한 기복 없이 유지되는 일상의 flow가 좋았고, 감당 가능한 책임과 무리하지 않아도 지속 가능한 관계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삶의 재미를 묻는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은 삶의 즐거움을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상태’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멘탈 트레이닝의 결과물이었을까. 웨이트를 하지 못하고, 연애를 하지 않고, 삶에 큰 재미가 없어도 못 버틸 불안함은 없었다.
2026 새해 목표
2년 동안 멘탈을 길렀다면, 이제는 결과물을 낼 차례다. 2026년은 지금껏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을 매듭짓는 한 해로 만들 계획이다.
출간
글을 써온 지 벌써 5년이 넘어간다. 잘 써서 글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인턴 시절 글을 읽어보면 이불킥 감이다. 그보다 병원의 일상에 하나씩 의미를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가늘고 길게 쓰다 보니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쌓인 글만 200편이 넘어갔다. 무분별하게 산재되어 있는 글들을 모으고 분류를 할 계획이다. 어느 출판사에서 받아줄지, 과연 받아줄 출판사가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2026년은 직접 종이를 사서 인쇄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병원의 일상을 한 권으로 집약해야겠다. 3년째 되새기고 있는 꿈이지만 올해는 교보문고의 테이블에서 내 책을 볼 수 있길.
논문
2년간 세 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말이 세 편이지, 논문을 한편도 못써본 초보에게 논문은 어마어마한 장벽이다. 하지만 세편 중 아직 Publish 된 것은 한 편도 없다. Submission을 전전하다 구천을 떠도는 한 편이 있고, 한편은 Submission 후 에디터의 무한한 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마지막 한편은 이제 막 완성이 되었다. 세 편 모두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지어야겠다. Impact factor에 욕심내지 않고 어디든 마무리를 짓는 한 해로 만들어 나가기.
학위
결국 가방끈을 연장했다. 석사를 끝내고 조금 쉬다 다시 학위를 이어갈까 했지만, 결국 연달아 등록해 버렸다. 공부는 할 때 하는 거라며 부추긴 주변인들과, 같이할 동기들이 있을 때 대학원을 다니는 편이 편했다. 전공은 의료 인공지능. 일반인과 비교해 AI에 대한 지식은 전혀 다를 바가 없지만 오로지 미래 지향적인 사고로만 전공을 택했다. 새롭게 듣는 대학원 수업이 수술을 전공하는 내게 또 어떤 지평을 열어줄지 기대된다. 수술과 대학원 공부의 균형을 잘 잡아가길.
관계
35살을 먹고 깨달은 나의 인간관계는 좁고 깊은 유형이었다. 한때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넓고 얕게 알아가며 인맥을 늘리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라고 여겼던거 같다. 하지만 가까웠던 사람들이 멀어지고, 기대치 않았던 사람과 깊은 대화가 가능하기도 했다. 관계의 소중함과 부질없음을 동시에 느끼며 알게 된 나의 관계 유형은 선별적 지속성에 가까웠다. 모두와 잘 지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고,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관계가 오히려 편안했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소모하며 관계를 확장하는 대신,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몇 사람과의 연결이 더 안정감 있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보다, 시간이 흘러도 자연스럽게 남는 사람을 곁에 두었다. 이 사람들에게 2026년에는 더 베푸는 것이 목표다. 하다못해 이유 없이 커피라도 한 잔 먼저 사는 지인이 될 예정이다. 더 벌어서 사람에게 더 쓰는 게 관계의 목표.
기타 etc,.
이 외에도 소소하게 지속하고 싶은 목표들은 덤이다. 벌써 전 시즌을 세 번째 돌린 프렌즈를 다시 한번 처음부터 볼 계획이다. 2025년 9월에 다녀온 일본이 너무 좋았던 탓에 일본어 성인 구몬을 신청했다. 다시 찾은 일본에선 이전보다 일본어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어야겠다. 음주 대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결정을 자주 택하고, 자는 시간에 관계없이 매일 이어지던 6시 기상은 2026년에도 이어갈 예정이다. 숙취로 다음날 하루를 망치는 날은 더는 없을 것,, 컨디션에 맞게 운동을 하고 조금이라도 무리가 되는 날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게 상책이다.
또 한 번 잘 버텨낸 2025년이었다. 2026년은 도약의 한 해로 삼기보다, 지금까지 다져온 나의 생활에 밀도를 더하는 한 해로 삼아야겠다. 늘 행복할 수 없듯, 삶이 늘 상승 곡선을 그릴 필요도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