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피는 계절에
지인의 부친, 명복을 빕니다.
지인의 89세 부친께서 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함께 진주장례식장에 갔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화환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ㅇㅇ건설 대표이사 ㅇㅇㅇ, 국회의원 ㅇㅇㅇ, ㅇㅇ케미컬 대표이사 등등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이산가족인 시부모님은 남쪽에 친척이 없고 남편과 나 또한 사회적 관계 폭이 넓지 않고 월급 노동자라 우리 죽음을 애도할 화환을 보내줄 만한 지인이나 거래처 또한 없는 편이다. 아직 학생인 두 아이도 연구실 같은 곳에서 근무하게 될 터이고 아이들의 연륜이 익기도 전에 우리 부부는 노년을 맞이할 것이다.
식장 앞 화환을 보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아마 네 개 정도는 식장 입구를 지켜줄 것 같기는 하지만, 갑자기 서럽고 쓸쓸한 마음이 왜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깟 화환이 무엇이라고. 나무코트를 입은 나 보다도 먼저 시들고 말 저것들이 이다지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까?
남해고속도로에는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보라색 향기로 손을 흔드는 등꽃 무리들이 아름다웠고 보기에 좋았다. 홀로 피어 외롭지 않게 무리 지어 군락을 이룬 저 꽃들. 작은 꽃들을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여럿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모습이 정다워 보였다.
차창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장례식장 화환보다 아름다운 꽃들이 지천이고 보고 또 보아도 다 보지 못할 꽃들이 지천인데, 나도 보지 못하는 시간에 돈지랄에 꺾꽂이된 그 가여운 꽃들이 나의 죽음을 지키게 하는 것이 뭐가 그리 부러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등꽃처럼 나는 피어있고, 먼저 가신 분을 애도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 쪽에 있었어 감사한 생각도 들었다.
가신 임의 장례에 요만큼 더 익은 나를 들여다보게 된 하루였다
임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