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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isbumpy Feb 09. 2022

지독한 우울증을 날려버린 방법

따라만 해보세요. 조금 나아질 겁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작년 12월 말, 당차게 퇴사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런데, 이 우울증을 날려버린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이런 선택을 하기 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지금도 우울증과 함께하고 있는 중일까? "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덮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를 맞이하며 호텔관광업계는 큰 타격을 얻어맞는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상대팀이 만루 홈런을 8회 말까지 4번 가까이 때렸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다시 이길 확률이 없을 만큼 수많은 관광숙박업체는 수치화하기 미안할 정도의 엄청난 타격을 맞았다. 뉴스에도 많이 비쳤듯이, 줄곧 도산하는 회사도 많았으며, 어느 업체는 코로나 격리 수용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는 호텔리어였다. 서울에서 가장 잘 나가는 5성급 호텔 중 한 곳의 프론트데스크 직원이었다. 적어도 마지막엔 말이다. 내 인생은 꽤나 탄탄대로였다. 군대 2년 그리고 대학 4년을 마치고 쉴 틈 없이 바로 취업 문을 열고 나간 럭키가이였으니 말이다. 전공을 살려 관광숙박업에 취업을 했고, '서울의 잘 나가는 5성급 호텔'에서 근무하는 호텔리어는 26살의 나에게 꽤나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직업이었다. 코로나라는 변수가 생기기 전까진 말이다. 


 2019년 12월 입사 후 지원한 부서(프론트데스크_업무)가 아닌 '벨보이'로 근무를 시작했다. 바로 메인 업무에 투입되기까지 호텔의 전반적인 시설과 선배들의 응대법을 보고 배우라는 이사님의 현안이었을까? 가끔은 원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한다는 사실에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 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스펙을 쌓고, 준비해서 이 호텔에 취직한 건가..?.. 하..'라는 생각 말이다. 사실, 업무의 형태만 다를 뿐 같은 서비스를 하는 맥락은 같은데도 불구하고, 상상했던 업무가 아니라는 상실감이 심심치 않게 다가왔다.


먼저 이 업무를 제안한 이사의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서비스와 고객응대 그리고 선배들마다 대처하는 방식을 한 발 뒤에서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아마도 실전에 처음이었던 내게 이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업무 배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눈치도 빨라지고, 호텔을 찾아오는 고객들의 몸짓과 손짓만 보더라도 어떤 것을 원하는지 단 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그리고 프론트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 나라면 어떻게 대처할까?..'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고, "이제는 지원했던 부서로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희망 어린 생각을 하던 찰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는다. ".. 시 x...... 괜찮아.."


나는 체스판 위의 말처럼 경영진들의 입 맛에 맞추어 부서를 옮겼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계약직 직원들은 계약 연장이 어려웠고, 나 같은 신입 직원들은 그들의 자리를 메꾸는 대체 자원이 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파트는 아웃도어/피트니스 팀이었다. 로비에서 정장을 입고 일했다면, 이곳에서는 후줄근한 체육복 모양의 유니폼을 입어야 만한다. 실제로, 나와 비슷하게 입사한 선배 중 한 명은 이 유니폼이 자신을 너무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입을 때마다 고스란히 괴로운 마음을 드러냈다. 결국, 그는 머지않아 회사를 떠났고, 나는 이곳에서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을 근무한다. 


입사 후 벨보이로 4개월, 아웃도어팀에서 1년 4개월.


정체성의 혼란은 매일 아침 나를 찾아왔고, 도망을 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직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까? 수많은 서류 탈락과 면접 실패가 난무했다. 이때 나의 자존감 수치는 보이지 않는 싱크홀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또 다른 회사에 지원을 했고, 감사하게도 몇몇 회사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다. 내 인생에서 도망이란 없는 단어였는데, 자발적으로 '도망자'가 되는 기분이랄까? 스스로에게 떳떳한 움직임이 아니라는 생각에 숨 쉬는 행위조차 답답하고, 가슴이 옥죄어 왔다.

 마음이 움직인 자발적 움직임이 아니라, 단순히 도망을 위해서 선택을 했고 이전에 내가 원했던 일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 한채 도망치려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렇게 이직을 포기한다. '단지 이 순간과 상황이 싫어서가 아닌, 스스로 떠나야 할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떠날 자격조차 없다.'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작은 즐거움을 발견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는데 힘썼다. 


분명 나는 우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점점 더 고독으로 빠져들어가고 고독함 속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다가오는 우울함을 그대로 맞이했던 것 같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겹친다고 누가 그랬던가? 세상의 모든 어둠이 나에게 드리워지는 듯했다. 그냥 그렇게 나는 어둠 속에 파묻혔다. 보이지 않는 어둠에 쭈그려 앉아있어 보니, 작디작은 한 줄기의 빛과 가끔 불어오는 살랑바람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사실 이 우울증이라는 놈은 소리 소문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아니라고 부정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놈은 이전부터 내 옆에 있었다. 나는 꽤 반짝거리는 멋진 로봇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는 그리고 나름 꽤 일도 잘하는 그렇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는 부식되어가는 로봇.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괜찮다고 되뇌며, 이 상황을 버텨나갔다. 


 비유하자면, 내 안의 톱니바퀴는 제자리를 찾지 못해, 다른 부품과 맞물려 있었으며, 깊숙한 곳에 위치한 부품은 조용히 녹슬어 가고 있었고, 시스템은 업데이트를 해야만 하나, 용량 과부하로 인해 이전의 데이터를 싹 다 지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를 찾지 못하는 상태.

 아마 속보단 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각종 영양제를 기존보다 다양하게 챙겨 먹기 시작했다. 속이 썩어 문 들어지는지도 모른 채로 그리고 영양제를 먹으면 조금 나이지지 않을까?라는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에. 우울한 감정과 고독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회피했다. 마주하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다는 막연한 무서움이 나를 덮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우울증을 날려버린 방법

[첫 번째, 달리기]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울증은 더욱 깊어졌다. 죽을 것 같은 정신적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분명 살고 싶었다. 스스로 더 이상 우울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른 곳에 집중해야 만한다고 육감이 말을 해줬고, '몸이라도 힘들면 지금보다 정신이 덜 힘들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평소 땀이 나는 것을 굉장히 꺼리고, 운동은 관상용 근육을 위해 간간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게 전부였다. 유산소 운동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힘든 운동이라고 치부해왔고,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체력은 저질 그 이하였다.


 처음엔 3분조차 뛰는 게 어렵고, 3km는 무슨 1km도 안 쉬고 달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근데 말이지, 이렇게 가쁜 숨을 이끌고 목표한 만큼 이루어냈을 때 내쉬는 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값졌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은 나에게 고생했다고 위로를 보내는 듯했다.


 달리는 순간에는 오로지 호흡과 다음 스텝만을 생각한다. 달리기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바랬던 대로 중요하지 않은 생각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당장 집중해서 생각해야 하는 문제와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달리기를 20~30분 이상 지속하다 보면, 지루한 순간이 찾아온다. 이때, 호흡과 자세는 자동화된 움직임을 구사하기 시작하고 온갖 잡념들로부터 멀어지며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뇌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만큼 폭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문제에 대한 집중력 그리고 해결력은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몸이 힘드니,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에너지가 없다. 온전히 바라봐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만 생각한다. 엄청난 생산성이다. 어느 외국 기업에서는 미팅을 '플랭크 자세'로 진행한다고 한다. 직원들은 자신의 담당 프로젝트를 설명하거나 의견을 말할 때 플랭크 자세를 취하여, 핵심 주제와 안건에 대해 집중하고 필요한 말만을 한다.


왜냐면, “힘드니까!”


 이런 재미있는 회의 방식 덕분에 시간도 절약하고 불필요한 생각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기업에서 활용하기에는 너무 극단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방법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재미있는 실험의 결과는 몸이 힘들면 생각은 본질에 집중하고 필요한 사실만을 꺼내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나는 달리기를 하며,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나가는 연습을 했고 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체적인 건강함도 되찾았다. 직장생활을 하며 망가졌던 나의 신체리듬과 체력 그리고 쉐잎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100% 사실이다.


직접 겪어보니, 확실히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은 분명 피곤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육체와 정신에 건강함을 불어넣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운동을 즐겨할지 아닐지 모르지만, 혹여 운동을 멀리한다면, 게으름을 극복하고 매일 10분씩만이라도 조깅을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니, 부탁하고 싶다. 당신을 위해 그리고 주변을 위해서 당신이 건강했으면 한다.


[두 번째, 메모 그리고 에세이]

달리기를 하며, 매일 생각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생각은 엄청나게 휘발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이때 몸소 느꼈다. 멋진 아이디어도 금세 다른 환경에 놓이는 순간 날아가버렸고, 빈자리에는 새로운 생각이 이어졌다. 평소에 망상과 상상을 자주 하며 혼자 피 식대는 편이다. 과거의 나는 이런 생각을 굳이 잡아둘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그저, 심심풀이 땅콩 같은 존재라고 여겼으니 말이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이 건강한 생각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엄청난 것에 대해 기록해야 만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 '메모'를 활용해 생각이 휘발되지 않도록 순간의 느낌과 생각을 최대한 적어 내려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촬영했고, 이를 토대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보기엔 투박하고 볼품없는 글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바라보기 기에 최고의 움직임이었다.


“글을 많이 써본 경험이 없으니, 엉망진창인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예전부터 일기를 꼬박꼬박 써보자고 매년 다짐했지만, 늘 나의 에세이 노트는 5~10장만이 빼곡했다. 나머지 280페이지는 새것과 다름없다. 늘 그렇게 게으름과 망각에 이를 놓쳐버렸다. 아무래도 글 쓰는 행위가 나에겐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어찌 됐든 나는 달리기를 할 때 들었던 생각을 시작으로 메모하는 습관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점차 발전해 투박하지만 감성적인 에세이로 변모했다. 글을 써보니, 정말 적나라한 생각을 두 눈으로 마주한다. 어디 내놓기에 부끄러운 말과 생각, 또 글솜씨는 얼마나 부족한지..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이 글쓰기를 통해 내가 현재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한 번 더 생각하고 문제를 직면한다는 사실이다. 어둠이 무서워 바닥만 보았던 내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어둠을 마주 보기 시작했다.


 글의 주제는 이랬다. 그동안 뱉지 못했던 말,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 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정리, 앞으로 내가 나아갈 방향, 우연히 지나가다 보게 되는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쓰게 되는 글 등 주제와 장르는 '나'였고, 그저 닥치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속이 시원해졌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고민이 해결되는 것 같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어렴풋이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글이란, 필자가 힘든 상황에 처할수록 밝게 빛난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고, 힘들 때 글이 내포하는 의미가 강해지기도 하고, 그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가 되면 필자의 흠집이나 솔직 담백함이 저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정도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누구나 비슷한 감정을 사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이는 적기 때문에 가끔은 진정성이 묻어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기도 한다.

글을 썼다고 하여, 이 소중한 글을 굳이 남들에게 공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의 경우 당당히 인스타그램(SNS)에 공유했다. 내가 운영하는 SNS는 인스타그램 하나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에 내 글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가끔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답글을 달거나 DM이 올 때면 소스라치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종종 공감이 된다거나 글이 좋다거나 하는 피드백을 받으면,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이것도 내가 나를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내가 만든 창작물이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인다.


 지금도 여전히 내 창작물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작용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힘듦을 극복한 것처럼 누군가도 나처럼 자신의 어려움을 당차게 밟고 일어섰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 내가 매체를 통해 위로를 받은 것처럼 그들도 내 글과 영상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마주하는 과정이다. 한 단어, 한 문장, 한 단락 적어 나가다 보면 나를 전보다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제 3자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해야 할까?


 사실,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본인의 문제는 남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해결하지 못하고, 운 좋게 흘려보낸다면 나중에 다시 그 어둠이 찾아왔을 때, 몇 배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글쓰기는 나를 돌아보는데 가장 좋은 도구이기에 우울증을 극복하는 핵심 도구다. 분명 어느 순간 글을 쓰다 보면, 멋을 부리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자신의 색이 담긴 담백한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뭐든, 많이 해보는 게 고수가 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나도 글을 자주 쓰다 보니, 전보다 이야기의 핵심이 굵어진 듯하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늘 그랬듯이 잘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당신이 만약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종이에 적어보기를 추천한다. 직접 눈으로 그 생각을 바라보면, 전보다 더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게 되거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많은 문제는 그리 어려운 해결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하다.


[세 번째, 독서]

위로를 받고 싶은데, 내 힘듦을 누구에게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촌놈은 취업 후 서울에 올라와 자취방을 구했고, 같은 지하철 라인이면 금방 갈 줄 알았지만 집에서 회사까지 거리가 버스로 약 한 시간 10분 정도로 꽤 멀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아깝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선택한 게 바로 '독서'다. 사실, 나는 영상매체와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며, 책을 펴는 순간 잠이 쏟아지는 사람이다. 그러나, 통근길에 독서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에 버스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 나는 종종 서점에 들러 나를 위로해주는 듯한 표지 또는 제목이 보이면 덜컥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주로 에세이 또는 소설이었다. 이 중 소설책에 대한 비중이 높았다. 예전에는 소설을 책으로 보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게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었다. 근데, 어느 날부터 소설책에 나오는 구절 하나하나가 마음을 훑고 가기 시작했다. 소설에는 '묘한 힘'이 있다. 지금 내 상황에 빗대어 생각하게 만들어주고, 가끔은 나를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현실을 잊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의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자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며, 직접 어느 장소에 가보지 않아도 작가의 언어를 통해 그의 지식과 경험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힘이 들 땐, 누구보다 큰 위로가 되어준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 위로 이상의 과도한 첨언이나 조언은 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만큼만 받아 들 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순간에만 즐길 수 있다. 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나를 치료할 수 있는 도구란 말인가?


책은 늘 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분명 앞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분명, 우울증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에는 책이 나에게 선사해준 힘이 한 몫했다. 물론, 영상매체보다는 자극적이진 않지만 책 보다 이로운 것은 없다. 너무 바른 이야기라 재미없을지 모르지만, 사실인걸 어떻게 하나.



여러 부서에서 근무하며 우울증을 앓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 노력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 내음이 느껴질 때쯤,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어 점점 커져갔고, 나는 결국 '퇴사'하기로 마음먹는다. 입사한 지 2년이 되는 계약 종료가 되는 날, 정규직으로 전환됨에도 불구하고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더 이상 체스판 위의 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체스판을..  아니, 모두가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물론, 바꿀 수 없는 환경이 들이닥쳤기에 상황이 나를 이렇게 내몰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나를 비유하자면,  나는 그저 체스판 위의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후, '그토록 간절하게 근무하고 싶던 부서에서 근무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단념하던 순간, 프론트데스크에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이지, 간절히 원할 때는 오지 않던 기회가 돌아서나 찾아온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야속했다. 누군가에게는 뻔하고 당연한 기회가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이 통보를 받은 후 '어차피 내가 경험하고 싶었던 것은 프론트데스크의 업무였으니, 계약까지 남은 기간인 4개월 동안 프론트데스크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워 나가야겠다.'라고 다짐하며, 그렇게 마지막까지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다했다.



 작별은 언제나 아쉽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회사를 떠났다. 2년 동안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함께했던 모두가 그랬다.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지만, 내가 그래도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사람들 곁에 머무를 수 있었기 때문었다. 그런 사람들을 회사에서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 아직도 어떻게 신세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스스로가 아쉽다.


" 그래서 내 우울증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과연 극복했을까?"


"극복했다. 극복을 넘어 긍정적인 생각이 가득하다. 하지만, 때로는 이놈이 내 방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면, 문을 흔쾌히 열어주고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물어볼 준비가 되었다. 아.. 마.. 도..?"

 우울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이제야 조금 알겠다. 다음에도 어둠이 나를 드리워온다면, 나는 어김없이 또 작아지고 밀실에 들어가 움츠리고 앉아있겠지만 나는 다시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에겐 꽤나 멋진 극복하는 도구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 3 가지 노하우가 당신의 우울증 극복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직접 느끼고, 그걸 스스로 해결하려 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늘 그렇듯이 문을 열고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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