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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알못에서 클미녀가 되기까지(1)

클래식 알못에서 클래식에 미친 자로 가는 첫 여정

by 규규

미리 말해두건대 나는 음악전공자가 아니며, 음악교육이라곤 초등학교 때 피아노학원 몇 년 다닌 것과 학교 교육과정이 전부다. 교회도 다니지 않았고 엄마는 미스터트롯을 좋아한다.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케이팝과 락음악으로 가득했다. 클래식은 가사가 있는 노래가 거슬리는 순간들(수학문제 풀 때라던지, 게임 배경음악이 필요하다던지)에 여러 모음곡을 들었던 기억이 전부다.

이처럼 3년 전만 해도 내가 일년에 수십 번 예술의 전당과 롯데콘서트홀을 퇴근 후(중요) 찾아가고, 서울로는 모자라서 경주, 통영, 대전으로 원정가고, 한 술 더 떠서 오스트리아 빈, 독일 바덴바덴, 하이델베르크, 프랑스 파리에서 오케스트라를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비단 방문한 콘서트홀의 폭 뿐 아니라 나의 삶을 대하는 가치관과 마음가짐도 클래식을 접한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앞으로 써나갈 글들은 그 시작과 과정, 그리고 앞으로의 기대에 대한 이야기다.


첫 시작은 사소했다. 때는 22년 가을이었다.

당시 문화예술 공공기관에 재직중이었던 나의 동료 중 70%정도는 예술 전공자였다. 미술, 무용, 음악, 연극...다양한 장르의 이론과, 실기과가 다양하게도 모여있었고 모두의 세계는 예술이라는 같은 말로 묶이기 민망할 정도로 평행선을 달렸다.

그 중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동료는 작곡 전공이었다. 그녀의 가장 신기한 점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무섭게 싸늘하면서도 (모든걸 귀찮아 함. 특히 걷기) 자신이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그리고 일부 아이돌)에 대해서는 밤샘을 무릅쓰는 열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전자가 신기했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 클래식이란......존재하되 경험한 적은 없는 미지의 세계였기에, 반차를 내면서까지 일년에도 수 십번, 클래식 공연을 즐기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여느 평범한 날로 기억한다. 그가 내게 물었다.

"조성진 공연 보러갈 생각 있어요?(단돈 9만원) "

요는 예매를 했는데 동행이 피치못하게 못 가게 되어 표가 남았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고민했다.

당시 나의 조성진 피아니스트에 대한 인상은 대략......피아니스트계의 김연아 선수(?)였다. 일종의 위인, 한 분야에서 대가를 이룬 사람. 김연아 선수의 은퇴 후 현역 시절 아이스쇼를 못가본 걸 두고두고 후회한 나는 인생에서 한 번 쯤 경험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덥석 제안을 물었고, 당시만 해도 두시간 공연에 9만원을 쓴다는걸 믿을 수 없어하며 (훗날 9만원이면 앞으로 굴러도 뒤로 굴러도 너무나 가성비라고 읍소하게 된다) 그럼에도 인생에서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테니 '위인'을 보는데 이정도 소비는 감수하자며 조성진씨의 공연을 보러갔다.


그리고 그날 나는 화끈하게 졸았다. ^_^


변명은 많다. 너무 바쁘고 힘든 와중에 참석한 공연이었으며, 공연장이 성남에 있었고, 비도 왔기에 온실 속 서울 사람인 나에겐 공연장까지 가는 여정 자체가 너무 멀고도..피로했다…

프로그램도 무려 헨델과 하이든이어서 꽤 예습을 했음에도 그 정직하고 단아한 소리들이 너무너무 온화한 자장가처럼 들려버렸다…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 속 머쓱한 마음을 감추고 나도 함께 박수를 쳤다. 박수가 잦아들고 앵콜 곡이 시작되자, 순간 공연 중에는 탄성이나 소음을 내면 안되는 공연장의 불문율이 깨졌다. 딱 1초, 예기치 않게 터진 탄성 속 나의 소리도 있었다. 왜냐면 ‘아는 곡’(=유명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쇼팽의 스케르조였다. 아마 조성진 쇼팽 모음곡으로 유튜브 뮤직에서 랜덤으로 여러 번 들은 경험이 그 특유의 빠른 잇단 시작음을 내 뇌리에 각인해 둔듯 했다. 물론 당시에는 이 곡이 스케르조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다만 예기치 않은 순간에 ‘아는 곡’을 마주한 약간의 흥분이 깊게 뇌리에 박혔다.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공연장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클래식 공연에 대한 첫 감상은, 음….졸아서 좀 머쓱하지만 마지막의 그 감각이 인상깊어 한 번쯤 더 경험해보고 싶다,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삶의 방향을 바꾼 나의 클래식 첫 경험은 이처럼 약간은 뜨뜻 미지근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큰게 왔다'

6598_15916_2245.jpg 나의 첫 콘서트홀 방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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