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클래식 간증 쇼 (100%실화입니다)
때는 23년 1월, 겨울이었다. 지난 조성진 리사이틀 이후 클래식 공연을 한 번쯤 더 보고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중 직장동료(앞으로 귀인으로 칭함)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정명훈 마에스트로, 그리고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협연 공연 예매에 성공했다. 그것도 무려 토, 일 양일을 연달아서!
지난 경험을 통해 ‘아는 곡’의 중요성을 실감한 나는 예매에 성공한 날부터 두 일자의 공연 프로그램, 즉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 브람스 교향곡 1번, 마탄의 사수 서곡,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성심껏 예습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교향곡을 1악장부터 4악장까지, 협주곡을 1악장에서 3악장까지 온전히 듣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너무너무 괴로웠다. 몇 번을 들어도 내가 이 곡의 어느 지점을 듣는지 헷갈리고, 악장 구분도 안되고, 지루하고, 자꾸 자극적인 케이팝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어쩌다 한 번 케이팝을 들으면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은 상쾌함과 도파민마저 느껴졌다(이때 들은 곡: love me right, exo 등;). 하지만 지난 첫 공연에서 느꼈던 ‘아는 곡’을 들었을 때의 전율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어서, 또 귀중한 공연 참석의 기회를 보다 온전히 즐기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약간의 오기로(?) 묵묵히 수백 번 예습곡을 듣고 또 들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참석한 내 인생 두 번째 공연장도 지난 성남에 이어 역시 멀리 인천이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송도에 가서 귀인, 친구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아트센터인천 3층에 자리잡았다. 앉자마자 나는 탄식했다. 지난번 공연은 1층이어서 잘 보였는데, 이번엔 3층에서 내려다보는 오케스트라는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음악은 제대로 들릴지 지레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의 첫 호른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그 모든 걱정은 기우였음을 느꼈다.
그날 처음 접한 오케스트라의 음의 향연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난 피아노 단독 리사이틀과는 전혀 달랐다. 그 모든 음색의 악기들이 완벽하게 조직되어 3층 어드매에 위치한 나의 귀를 꽝꽝 때렸다. 그 직관적인 심상과 즐거움, 아름다움, 슬픔과 초조함, 비애 그리고 모든 곡의 끝에서 마주하는 해방과 환희는 그동안 음원으로 수백 번 들었음에도 전혀 다른 감각을 느끼게 했다. 러시아의 청색 파랑이 떠오르는 듯한 1악장, 멀리 퍼지는 물결 같은 플룻이 돋보이는 2악장, 모두가 휘몰아치는 숨막힐 듯 뛰어나가는 3악장까지…
가장 충격적이었던 순간은 (아마 무덤 속에 들어가는 그날까지도 기억날) 브람스 1번 교향곡 4악장의 피날레다. 일시에 모든 오케스트라 악기가 같은 음을 연주하는데(내 썩은 청음실력으로 맞을지 모르겠는데 (솔?~미미파~파솔파파미 파~~~레~~~~솔라솔 솔라솔~) 그때 정말 모든 홀에 음악이 꽉 울려 퍼지며 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점점 무슨 간증같아서 스스로도 조금 징그러워지려고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눈 앞이 황금으로 물들었다. ;;;;(혹시 나 다나에? 황금빛의 제우스가 나에게 내리는가?)
전국민이 알고 있는 차이코스프키 피아노 협주곡의 1번의 시작을 알리는 힘찬 호른소리 이후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걸 모르고 죽을 뻔 했다니!! 이렇게 멋진 예술의 아름다움을 영영 모를 뻔 했다니! 지금도 고래고래 비명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왜냐면 정말 그 공연장에 앉아 있기까지의 일련의 모든 일이 너무나 우연이고, 나의 삶의 일반적인 경로에서 완전히 벗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거기에 앉아있지 않는 것이 내겐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른 평생을 살며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약간의 치기 어린 선택과 귀인의 도움으로, 말 그대로 이 ‘사건’이 나의 삶에서 일어나버렸다. 해일을 단신으로 마주한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만약 삶이 실체가 있다면 끌어 안고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하여 공연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한시간 남짓한 버스 안에서 브람스 1번을 다시 들었다. 각종 숏폼과 트위터 중독자인 내가 핸드폰 한 번 하지 않고 음악만 들었다. 음악에서 나오는 도파민만으로 이미 뇌가 미친듯이 돌아가고 상기된 볼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너무 흥분되어 잠도 잘 안왔다. 그날 새벽 일어나 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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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렌 맘에 새벽 내내 선잠을 자다가 아침 여섯시 즈음 깼는데, 눈을 뜨기도 전에 막연한 행복감이 들었다.
그 행복감은 만족스런 어제를 보냈다던가, 오늘 하루가 기대된다던가 하는..내 기억과 예상이 닿는 삶 저변의 만족감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막연하게도 내 삶의 끝까지 멀리 내다보는 느낌의 감각이었다.
어제 경험한, 오늘 경험할 오케스트라 공연을 말미암아 예상하는 이 감각을 비유하자면
내 키만한 선물상자가 가득히 쌓여있는 무한히 넓은 방 안에 뿅하고 들어온 느낌이다.
선물상자들은 정육면체 모양새로 상단에 리본이 묶여있는, 아주 전형적인 생김새다. 위의 뚜껑을 살짝 열어서 내부를 탐색할 수도 있다. 작고 큰 알록달록한 예쁜 선물상자들이 가득하다.
나는 매일매일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관념 속의 어린아이처럼 이 선물상자들을 마음껏 열어볼 수 있다.
어떤 선물상자 안에는 또 다른 선물상자가 마트료시카처럼 겹겹이 들어있기도 하고
또 어떤 선물상자는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우연한 계기와 적극적인 선택이 아니면 영영 미처 열어보지도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선물상자를 열었을 때는 조금 실망스럽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에 뭐가 들었든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할, 아마도 평생을 가도 다 열지 못할 선물상자가 가득한 방에 들어와버렸다.
어제, 오늘 처음 열어본 상자에 너무너무 맛나고 예쁘고 풍성한 게 들어있어 기쁘다.
이 설렘이 계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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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날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 선물상자들의 100분의 1도 다 열어보지 못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기한 것, 설레는 것, 기대되는 것들이 점점 사라진다. 그러나 음악만은 여전히 너무나 새롭다. 엊그제도 말러2번 예습하다가 눈물 흘린 건 안 비밀..
이 선물상자를 마음에 가득 차는 수준으로 열어보기 전까지는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때문에 음악을 업으로 삼는 전문 음악가는 아닐지라도 음악은 분명 내게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덤덤하게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