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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기 Feb 05. 2021

살아있는 박물관

슬프지만 기쁜

자연사박물관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오늘도 역시나 내가 지만이를 깨웠지만 지만이는 내가 깨우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바로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을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 또한 기대가 많이 되었다.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은 국립기관은 아니지만 엄청난 수장고를 자랑한다. 혹시나 수장고를 볼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에 일찌감치 움직였다.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으로 가는 길에는 나무가 참 많았다. 혹시나 민민매미가 있을까 봐 이 나무 저 나무를 보면서 갔다. 


박물관 입구에는 커다란 고래뼈 표본이 있었다. 그리고 입구 근처 나무에 민민매미 한 마리가 보였다. 그러나 내 앞에 일본 꼬마 아이가 똘망똘망하게 매미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매미를 손으로 잡아서 아이 손에 쥐어줬다. 아이는 신기하듯이 매미를 보던니 금방 놓아주었다. '하... 오사카에서 처음 본 민민매미인데 측정도 못해보고 이렇게 보내는구나.'라고 속으로 말했다.

2019. 08. 20. 일본. 오사카.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 앞에서 본 민민매미
2019. 08. 20. 일본. 오사카.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에 들어오고 나서 잠시 후에 신야케 박사님을 뵐 수 있었다. 우리는 신야케 박사님 방으로 가서 그동안 어디에 있었고 태풍 만났던 이야기 그리고 민민매미를 몇 마리 채집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궁금해하시는 한국에 참매미는 전국적으로 어떤 형태와 소리 그리고 생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지난 4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참매미에 대해 말씀드렸다. 


신야케 박사님께서 다음 주에 나가노로 채집을 가는데 같이 갈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엄청 가고 싶었고 영광이었지만 일정 때문에 그러지 못하였다. 박사님께서 우리를 박물관 수장고로 데려다주셨다. 박사님께서는 오사카에 머무는 동안 원하면 수장고를 열어줄 테니 마음껏 보라고 하셨고 더불어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에 열리는 특별 전시전 표를 건네주셨다. 신야케 박사님 덕분에 마음껏 수장고를 볼 수 있었고 사진 촬영도 허락을 구했다.

2019. 08. 20. 일본. 오사카.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 곤충 수장고
2019. 08. 20. 일본. 오사카. 수장고 안에 있는 곤충 표본을 보는 나

수장고를 보던 중 신야케 박사님께서는 한국의 매미 표본을 가져오셨다. 그중에 참매미가 눈에 띄었는데 채집 위치가 신야케 박사님과 방에서 말했던 변이가 많이 나오는 곳이었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표본은 변이 개체는 아니었다. 신야케 박사님께서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 매미 표본을 다시 한국에 보내고 싶다고 하셨다. 지금이라도 줄 수 있으니 가지고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지만 우린 짐을 최대한 줄이고 다녀야 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살펴본 결과 모든 표본이 다 중요하지만 엄청 중요한 표본은 없었기에 일본에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에 오면 좋지만 옛날 조선왕조실록을 여러 군데 보관한 것처럼 각 나라의 중요한 표본들은 여러 나라들의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 외에 미국, 호주 등 다양한 나라에 표본이 있었다. 하루 종일 수장고에서 표본만 보았지만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는 표본 중 1%도 못 봤을 것이다.

2019. 08. 20. 일본. 오사카. 우리나라 매미 표본도 있었다.

일본 매미들도 관심이 많았는데 표본을 보다 보니 다른 종들이 몇 개체씩 보관되어 있는데 성체 한 개의 표본과 다수의 탈피각 표본만 있는 매미가 있었다. 일본에서 제일 귀한 종인 야쿠시마깽깽매미였다. 야쿠시마는 일본 후쿠오카 아래쪽에 있는 섬인데 '원령공주'에 배경이 되는 섬이다. 작년 학회 때 교토대 교수님으로부터 야쿠시마 섬에서 일본 야생 원숭이를 연구하는데 연구원으로 올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물론 좋은 기회였지만 다른 연구를 진행 중이라 아쉽게도 가진 못했다.


야쿠시마깽깽매미는 높은 나무에 주로 있는데 원시림을 유지하고 보호하고 있는 야쿠시마 섬에 나무들이 너무 커서 인간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위치에 있기에 표본 수가 적다고 한다. 

야쿠시마깽깽매미 (Auritibicen esakii)

그밖에도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개구리의 기준 표본(신종을 발표할 때 분류학적으로 기준이 되고 증거가 되는 표본)이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해서 양해를 구하고 양서파충류 수장고에도 들어왔다. 너무 많은 표본이 있어서 하나하나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주로 연구하는 Hynobius속에 도롱뇽들의 표본들도 봐야 했고 또 하나하나 보다 보니 관심 가는 양서류들의 표본들이 너무 많았다.


내 욕심도 많았지만 일본에 와서 가장 보고 싶은 개구리 본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에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있었다.

2019. 08. 20. 일본. 오사카. 양서파충류 수장고
2019. 08. 20. 일본. 오사카. 일본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개구리인 Japanese gliding frog(Zhangixalus schlegelii)

신야케 박사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음에 또 뵐 수 있기를 기약했다. 박사님께 특별 전시전 표를 줬지만 우리는 연구가 먼저였기에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지만이에게 말했다. 지만이는 꼭 보고 싶다며 오사카에서 20마리 이상 민민매미를 채집하고 측정까지 다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못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지만이는 의욕이 넘쳤는지 모리야마 박사님께서 알려주신 장소로 다시 향했다. 지난번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시골에서나 탈 법한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우리는 민민매미를 찾으러 갔다. 비가 아무리 왔어도 민민매미가 있을만한 곳을 찾았기 때문에 우화 하는 개체를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향했다.

2019. 08. 20. 일본. 오사카.

'크... 내 감이란.'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였다. 민민매미가 있을 법한 곳에 우화를 하고 있었다. 많은 개체수가 우화를 하고 있진 않았지만 민민매미가 있는 곳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으니 내일 채집하는데 민민매미가 사는 정확한 포인트를 찾는 수고를 덜었다. 지만이는 꼭 다 채우겠다며 전시회에 오사카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에 가자고 졸랐다. 나는 알겠다고 하며 피곤하니 이제 숙소로 돌아가자 했다. 우리는 돌아가서 빨래도 해야 했으니 할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일은 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여유를 찾았다. 여유를 찾고 산에서 내려오다 보니 오사카에 도시는 아직 잠들지 않고 환하게 우리가 돌아가는 길을 밝혀줬다.

2019. 08. 20. 일본. 오사카. 민민매미의 우화
2019. 08. 20. 일본. 오사카. 숙소로 돌아가는 길


P.S. 

먼저 생물들을 사랑하시는 분들께서 생물을 죽이면서 연구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생물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하물며 연구자라 할지라도 그러한 권리를 없습니다. 그래도 위와 같은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종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하고 생태를 연구하며 그들을 보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마냥 보전을 외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생물을 보전하기 위해서 근거가 필요합니다. 저는 제가 연구하고 있는 매미들을 보전할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입니다. 오랜 시간 연구를 하면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이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을 인지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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