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연구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무언가를 원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는 길을 나섰다. 설마 비가 오는 것은 아닐까. 날씨가 우중충했다. 여름이라 언제 비가 올지 몰라서 날씨가 맑은 날에 최대한 많이 걸으며 채집을 해야 했다. 우리는 전날 조사했던 민민매미 서식지의 포인트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동거리도 꽤 되고 산도 타야 했기에 가는 길에 샌드위치 하나를 사 갔다. 물도 2L는 챙겨서 갔다.
아침에 도착한 우리는 입구에 아침 식사를 했다. 저녁때까지 먹을 수가 없을 테니 식사를 즐기며 여유를 가졌다. 지만이와 나는 식사를 마친 뒤 산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 일본에 온 날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서 매일 산을 타더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산을 타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우리는 오사카처럼 낮은 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만이는 민민매미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갔다.
지만이와 나는 서로 떨어져서 채집을 하였다. 생각보다 쉽게 잡히진 않았다. 그래도 우리가 여태껏 다녔던 곳 중 민민매미의 서식 밀도가 가장 높았다. 가장 이상적인 곳이라 민민매미 서식지에 대한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해두었다. 민민매미는 왜 유독 계곡 근처에 존재할까라는 해답을 거의 찾아가고 있었다. 물론 고베에서는 계곡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상당한 음지에만 존재했다.
일본에 와서 애매미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과거 이영준 박사님께서 쓰신 매미 탐구기에 일본에 서식하는 애매미의 소리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애매미 소리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언급하셨다. 나 또한 일본에 와서 애매미 소리를 들으니 이영준 박사님 말씀처럼 정말 달랐다. 전에 중국에서도 애매미를 보았고 후에 기회가 돼서 애매미 표본을 보았지만 언제가 시간이 되고 돈이 된다면 동북아시아의 애매미에 대한 분류학적 정리가 필요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20년 정도 전에 교통과 통신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던 시절, 이영준 박사님께서 동북아시아를 다니며 매미를 연구하셨다는 사실에 존경과 놀라움에 연속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만이가 나에게 소리치며 채집이 끝나다고 달려왔다. 속으로 '독한 놈, 전시회를 위해 물도 안 마시고 미친 듯이 잡다니.'라고 생각했다. 오사카도 두 지역인데 한 지역을 더 확인해야 했다. 미누 공원인데 지만이는 숙소에서 쉬면서 채집물들을 정리하고 측정하는 동안 나는 혼자서 미누 공원에 가서 민민매미 포인트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였다.
일본의 공원들이 말이 공원이지 엄청나게 큰 숲 또는 산인 경우가 많다. 밤에 혼자 다녔는데 멀리서 건장한 청년들이 달려왔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야쿠자들인가 라는 생각이 들 찰나에 청년들 나에게 반갑게 '곤방와'를 외치며 지나갔다. '곤방와'는 일본에서 밤 인사이다. 알고 보니 야간 순찰대들이었다. 혼자 다니다 보니 무리 지어 다니는 사람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어둑한 길을 걸을 때 저녁매미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 같이 노래하는 녀석인데 혼자 밤에 길을 걸으며 들으니 소름이 끼치긴 했다. 물론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책에 그렇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미누 공원에서 채집하기 어렵거나 지만이가 이 날처럼 초인적으로 매미를 잡아주길 기대하며 지만이에게 간다고 전화를 했다. 그러나 잠에 들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방 키가 지만이에게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