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안 옆자리의 덩치 큰 개에게서 개 냄새가 났다. 벌써 오래 전에 맡아 본 냄새다. 잘 길들여진 개는 내 귀에도 거슬리는 요란한 전철 소리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자주 해버릇한 모양인지, 제 차를 기다리는 지루함에 시간을 죽이는 역사 안 사람들마냥 주인의 발치에 가만히 엎드린다. 주인이 먹을 것을 꺼냄과 동시에 개는 퍼뜩 자세를 고쳐 앉는다. 눈을 반짝이며 원하는 건 뭐든 할 테니 그걸 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개는 제법 크다. 도베르만 치고도 큰 것 같다. 단단해 보이는 매끈한 연갈색 다리에서 윤기 나는 검은 등으로 옮겨 가던 시선이 단미한 꼬리에서 멈춘다. 보기 좋게 짤막한 꼬리는 개가 아직 작던 날에 겪었을 고통을 떠올린다.
다시 한 번 개는 제법 크다. 개의 몸은 제 옆에서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 남자는 물론, 어느 인간보다도 더 강할 것이다. 개의 이빨과 무는 힘은 인간의 약해빠진 살갗따위 얼마든지 찢어버릴 수 있을 테다. 개의 목에 매인 줄이 남자의 손에 들려 있다.
기다리던 전철이 온 모양인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개 주인과 그 옆의 개를 본다. 네 발로 선 개는 남자의 허리께까지 온다. 아주 서면 남자만큼 클 것 같다. 하지만 개는 오늘이고 내일이고 착할 것이고, 그런 개의 목줄은 언제라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