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 Jung May 05. 2023

소소한 깨달음을 기록합니다

하루라는 기적을 누리는 방법


급한 성격인데 의사 결정엔 느린 편이다.

며칠전 '나혼자 산다' 지난 회차를 보며 나와 비슷한 캐릭터를 찾았다. 플리마켓에 가서 대충 쓰윽 보고 장바구니에 휙 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건 위아래 옆 심지어 바닥까지 살펴 원산지를 확인하고 구매 결정을 한 뒤 쌓인 먼지까지 싹 닦아 가져간 사람, 천정명씨. 꼭 나 같다. 따질 게 정말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재빠른 사람이 더 괜찮은 것을 가져갈 수도 있지만 내 선택에 신중을 가한다. 그렇게 챙기게 된 물건은 정말 필요한 것만 몇 개로 끝난다. 


만약 내가 비슷에 상황에 놓여진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상상해봤다. 신중을 가하는 건 비슷하지만 하나 다른건 '다른 사람이 좋은 걸 먼저 가져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을 분명 느낄것이라는 것. 빤히 예상 되는 불안감이다. 의식하고 내려놓자. 그저 내 선택에 만족감을 챙기고 무려 시세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집으로 돌아가 적절한 쓰임을 누리면 그만인 것다.




나는 몸 어딘가가 자주 불편한 편이다. 

아픈것과는 다르다. 진단명을 받고 입원하거나 앓아눕지는 않지만 늘 어딘가 불편감이 있다. 프로 신체적 불편러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출산 후 겁 없이 손빨래를 하는 바람에 늘 손가락이 아프고, 어느 날은 두피가 다른 감각으로 저릿저릿 내 피부가 같지가 않아 불편하고, 누워서 휴대폰이나 책을 보면 어김없이 다음날 어깨/목이 뻐근해져 두통이 오고, 골프 레슨 후엔 늘 골반 한쪽이 아프고, 구두를 신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 발바닥 뼈가 안 맞는 느낌이 나서 불편해지고, 어느 날 너무 힘드네 싶으면 70대의 심장 박동이 90대로 증가한 날이고... 정말 다양한 자극들이 늘 느껴진다. 그러니까 다시한번 정리해보자면 요즘 어린이 행동교정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감각에 좀 예민한 사람이 나인 듯 싶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진짜 무슨 큰 이상이 생겼을 때 초기 진단이 가능하다는 것. 2년전 쯤 횡단보도나 간판이 똑바로 보이지 않고 살짝 굴곡진 시선 왜곡이 생겼는데, 안과에 가니 일반사람이면 느끼지 못했을 텐데 초반에 잘 왔다며 안구 혈관이상 부분 처방과 필수영양제를 추천받아 지금도 관리 중이다. 




근데 최근 이런 나의 예민함으로 인해 겪은 일 중 이게 '내 불안의 표면화'인지, 아니면 '내 능력의 한계'인 건지 의심이 가는 일이 생겼다. 기한에 맞춰 4주간 글을 써야 하는데 초반부터 왼쪽 귀에 이명과 난청이 온 것이다. 분명 고민되고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아니 도대체 뭘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다고 그런 건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지금은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약 한 달째 일상이 불편하다. 수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간 사이 공부 좀 해보겠다고 하루에 8시간 공부하다가 등 부분 일부가 움푹 패이는 함몰이 생기는 바람에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까지 하고 공부를 때려치운 일도 있었다. 국소경피증이라고 원인 모를 자가면역 질환 중 하나였는데, 공부 그만두고 열심히 고기 먹으니 조직검사 흉은 남았지만 살만 잘 차올랐다.


어우. 내가 하겠다고 자처한 일까지 이렇게 예상치 못한 건강상의 데미지가 일어나니 의욕이 꺾인다. 엄청난 응원과 지지를 받고도 다음 스텝이 쉽지 않다. 실패할까 봐 불안한 마음, 잘하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가 컸겠지만 이렇게 자주 불편감을 느끼고 뭐만 좀 할라치면 또 아픈 몸뚱이는 아무래도 속상하다. 야금야금 떨어진 성능을 주장하는 몸 구석들이 혹시 어떤 큰 병명의 전조증상들이라면 대찬 놈 하나가 날 괴롭히는 게 틀림없을 거란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차오르다가 문득 이 마음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뭐만 할라치면 몸이 탈 나는 것. 나는 이것을 패턴화 하지 않을 거라고.


불편감을 느끼는 건 내가 기질상 타고난 거라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이야. 느끼지 않을 순 없어. 하지만 나는 그걸 흘려보낼 거야. 떠오르는 것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버리고 진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거야. 걸을 수 있는 두 다리, 안을 수 있는 두 팔, 왜곡 없이 보이는 시선, 잘 들리는 두 귀 등등. 모두모두 감사해하고 누리면서 살 거야. 


오늘도 발견할 것들을 글로 써 내려가고 있으니 잘했다. 번식하는 세균처럼 차오르는 불안을 회피하기만 더 불편해질 뿐, 없던 병도 생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냐. 가만히 바라보고 직시하다가 / 발견하고 / 흘려보내기를 연습하며 조금씩 더 나은 방법을 터득해 가는 거다. 왜 깨달음은 천천히 올까? 익스프레스 패스는 없는지... 3회 무임승차 가능 쿠폰이라도 좀. 지금 너무 해결하고 싶은 문젯거리가.. 있는데 (아 아름다운 인생이여!) 아무튼 굴레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2023.03월 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