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는 기적을 누리는 방법
급한 성격인데 의사 결정엔 느린 편이다.
며칠전 '나혼자 산다' 지난 회차를 보며 나와 비슷한 캐릭터를 찾았다. 플리마켓에 가서 대충 쓰윽 보고 장바구니에 휙 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건 위아래 옆 심지어 바닥까지 살펴 원산지를 확인하고 구매 결정을 한 뒤 쌓인 먼지까지 싹 닦아 가져간 사람, 천정명씨. 꼭 나 같다. 따질 게 정말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고민하는 사이에 다른 재빠른 사람이 더 괜찮은 것을 가져갈 수도 있지만 내 선택에 신중을 가한다. 그렇게 챙기게 된 물건은 정말 필요한 것만 몇 개로 끝난다.
만약 내가 비슷에 상황에 놓여진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상상해봤다. 신중을 가하는 건 비슷하지만 하나 다른건 '다른 사람이 좋은 걸 먼저 가져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을 분명 느낄것이라는 것. 빤히 예상 되는 불안감이다. 의식하고 내려놓자. 그저 내 선택에 만족감을 챙기고 무려 시세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집으로 돌아가 적절한 쓰임을 누리면 그만인 것다.
나는 몸 어딘가가 자주 불편한 편이다.
아픈것과는 다르다. 진단명을 받고 입원하거나 앓아눕지는 않지만 늘 어딘가 불편감이 있다. 프로 신체적 불편러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출산 후 겁 없이 손빨래를 하는 바람에 늘 손가락이 아프고, 어느 날은 두피가 다른 감각으로 저릿저릿 내 피부가 같지가 않아 불편하고, 누워서 휴대폰이나 책을 보면 어김없이 다음날 어깨/목이 뻐근해져 두통이 오고, 골프 레슨 후엔 늘 골반 한쪽이 아프고, 구두를 신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 발바닥 뼈가 안 맞는 느낌이 나서 불편해지고, 어느 날 너무 힘드네 싶으면 70대의 심장 박동이 90대로 증가한 날이고... 정말 다양한 자극들이 늘 느껴진다. 그러니까 다시한번 정리해보자면 요즘 어린이 행동교정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감각에 좀 예민한 사람이 나인 듯 싶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진짜 무슨 큰 이상이 생겼을 때 초기 진단이 가능하다는 것. 2년전 쯤 횡단보도나 간판이 똑바로 보이지 않고 살짝 굴곡진 시선 왜곡이 생겼는데, 안과에 가니 일반사람이면 느끼지 못했을 텐데 초반에 잘 왔다며 안구 혈관이상 부분 처방과 필수영양제를 추천받아 지금도 관리 중이다.
근데 최근 이런 나의 예민함으로 인해 겪은 일 중 이게 '내 불안의 표면화'인지, 아니면 '내 능력의 한계'인 건지 의심이 가는 일이 생겼다. 기한에 맞춰 4주간 글을 써야 하는데 초반부터 왼쪽 귀에 이명과 난청이 온 것이다. 분명 고민되고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아니 도대체 뭘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다고 그런 건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지금은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약 한 달째 일상이 불편하다. 수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간 사이 공부 좀 해보겠다고 하루에 8시간 공부하다가 등 부분 일부가 움푹 패이는 함몰이 생기는 바람에 대학병원에 가서 조직검사까지 하고 공부를 때려치운 일도 있었다. 국소경피증이라고 원인 모를 자가면역 질환 중 하나였는데, 공부 그만두고 열심히 고기 먹으니 조직검사 흉은 남았지만 살만 잘 차올랐다.
어우. 내가 하겠다고 자처한 일까지 이렇게 예상치 못한 건강상의 데미지가 일어나니 의욕이 꺾인다. 엄청난 응원과 지지를 받고도 다음 스텝이 쉽지 않다. 실패할까 봐 불안한 마음, 잘하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가 컸겠지만 이렇게 자주 불편감을 느끼고 뭐만 좀 할라치면 또 아픈 몸뚱이는 아무래도 속상하다. 야금야금 떨어진 성능을 주장하는 몸 구석들이 혹시 어떤 큰 병명의 전조증상들이라면 대찬 놈 하나가 날 괴롭히는 게 틀림없을 거란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차오르다가 문득 이 마음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뭐만 할라치면 몸이 탈 나는 것. 나는 이것을 패턴화 하지 않을 거라고.
불편감을 느끼는 건 내가 기질상 타고난 거라 그냥 받아들여야 할 것이야. 느끼지 않을 순 없어. 하지만 나는 그걸 흘려보낼 거야. 떠오르는 것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버리고 진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거야. 걸을 수 있는 두 다리, 안을 수 있는 두 팔, 왜곡 없이 보이는 시선, 잘 들리는 두 귀 등등. 모두모두 감사해하고 누리면서 살 거야.
오늘도 발견할 것들을 글로 써 내려가고 있으니 잘했다. 번식하는 세균처럼 차오르는 불안을 회피하기만 더 불편해질 뿐, 없던 병도 생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냐. 가만히 바라보고 직시하다가 / 발견하고 / 흘려보내기를 연습하며 조금씩 더 나은 방법을 터득해 가는 거다. 왜 깨달음은 천천히 올까? 익스프레스 패스는 없는지... 3회 무임승차 가능 쿠폰이라도 좀. 지금 너무 해결하고 싶은 문젯거리가.. 있는데 (아 아름다운 인생이여!) 아무튼 이 굴레에 나를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2023.03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