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정 Jun 17. 2023

아이의 방학이 두려운 엄마들과 나누고픈 이야기

아이의 방학에 대한 저항감을 저항한드아앗

아이의 방학에 대한 저항감을 저항한닷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그녀의 <방학>

공교롭게도 나는 그 방학 바로 전날 <장염>도 만나고 말았다.

하필 남편은 2박 3일 <출장>이다.


말 그대로 초대한 적 없는 '불청객'이 극심한 몸살기운과 함께 나를 먼저 방문하는 바람에 방학식 당일 홀로 병원을 찾았고, 들른 병원 1층에서 나는 또 다른 학부모를 마주쳤다. 그녀도 매우 아파 보였다. 성치 않은 목소리로 내게 겨우 인사를 건넸고, 나 또한 다 죽어 가는 소리로 '방학 때 잘 살아남아야 하는데 우리 꼴이 너무 웃기네요' 했다. 그녀는 오랜 감기가 낫지 않아 본격 방학 전 완치를 바라며 수액을 맞으러 왔다고 했다. 나도 복통과 몸살기로 병원에서 수액을 권한 몸이었지만, 하교 전까지 해치워야 할 것이 있어 약만 타고 바로 장소를 움직여야 했다. 일을 보는 중에도 여전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헛웃음이 새어 나옴을 느끼며 아이의 하교 시간이 다가와 오랜만에 학교로 직접 픽업하러 갔다.


학교가 드럼 소리로 엄청 시끄러웠다. 캠퍼스 한가운데서 타악기 밴드가 라이브 연주를 하며 아주 그냥 '풍악을 울려라~' 축제 한판이 열린 것이다. 그래... 재우는 거 빼고 다한 학교는 얼마나 신나겠어.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들에게도 교직원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나와 일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그들의 표정이 정말 환하다. 정말 정말 환하다. 두 달간의 여름 방학.


출처: cafemom.com, 흥미로운 도메인일세


반면 나에겐 무시무시한 방학이다. 완전 무장! 사진 속 리즈위더스푼이 내가 아니라고 말 못 하겠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봐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둘셋 거뜬히 키워내며 천기저귀 빨고, 문 앞 배송 없이 직접 장 봐오고, 돌봄 신청 없이 아이를 키워내셨고 특히 이 더운 여름에는 에어컨 있는 집도 드물었는데, 나는 모든 아이템들을 구비하고도 외동아이 하나 키우기가 뭐가 이리 힘든 걸까. 이거 너무 나약한 것 아니오?! 익히 들어왔듯 모두 잘 키워내고 싶은 욕심과 넘쳐나는 상품과 정보로 한데 뭉친 에너지 때문이겠지.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정말이지 방학이쟈나. 그렇쟈나. 나는 나아야만 한단 말이다! 소통욕구 만땅인 그녀가 24시간 붙어 있단 말이다! 아프면 안 돼!


하지만 근육통이 너무 심했고 나중엔 두통까지 동반되어 운동/독서/묵상 모든 루틴이 와장창 무너진 채 불편한 마음으로 유튜브만 보면서 며칠 더 누워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Me-time이 간절했으며 떨어진 체력으로 컴퓨터 앞에 앉거나, 혹은 누워 전자책을 읽다 잠들곤 했고, 아이는 옆에서 종종 심심하단 이야길 하며 내 마음을 철렁거리게 했다. 친구들 이름 몇몇을 헤아리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다음 주면 낫는다는 가정하에 플레이데이트를 잡았고, 남은 요일별로 뭐를 해야 할까 늦은 궁리를 했다. 아이를 위해 무언가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지금은 체력도 안 따라주고... 홀로 내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니 이 또한 참 답답하다...라고 생각하다가 오늘은 급기야 한글로 된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눈만 훑을 뿐 머리에 꽂히지 않고 외국어를 읽는듯한 느낌에 멈췄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고 있었다.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그깟 방학이 뭐라고... '무시무시'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열흘만 지나면 한국행 이건만 그 사이에 뭘 또 아이에게 채워 넣으려고 무슨 대비를 해야 한다고 그렇게 전투태세를 하고 앉아 있었나. 조바심을 거둬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무너진 루틴은 방학보다는 장염 영향이 클 텐데 모든 걸 아이에게 덤터기 씌울뻔했다.




그래서 내게 다짐하듯 말해본다. 특히 나 같은 풀타임 맘이라면 두 달간의 긴 방학 동안 무엇보다 '심심하다'는 아이의 말을 견뎌낼 면역력을 키워내자.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분명 아이도 충분히 심심해봐야 한다는 것을 육아지론과 같이 여겼건만 실전에서는 여전히 쉽지 않고 또 여전히 흔들린다. 엄마가 뭘 해줘야만 할 것 같다. '대체 이렇게 많은 소스가 있는데 왜 심심하다고 하냐'고 라떼는 말이야 꼰대 같은 소리도 입안에 머물고, '너는 상상력/창의력이 없어서 혼자 못 노는 것이냐' 하는 내가 어릴 적 엄마에게 들은 내면아이의 외침도 부글부글 대며, 플레이데이트를 잡아야 친구와 노는 게 성립되는 이 환경에서 엄마의 내향성이 끼칠 영향 등 다양한 두려움이 범벅된다.


장염과 함께 떨어진 에너지 덕분에 아이가 심심하다고 해도 내가 어찌해 줄 수가 없었던 시간이 <백신 후 항체가 생성되는 기간>이었다고 치자. 심심하다는 말을 견뎌야 한다. 늘 소비할 수도 없고, 특히 늘 육아+교육을 외주를 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짧은 순간 느껴진 감정을 그냥 내 앞에서 뱉어냈던 것일지도 몰라. 그다지 심심하지 않을 수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내 결정을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지지해야겠다는 마음도 든다. 방학이 되면 집집마다 여러 계획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은 무조건적인 사교육을 반대하기도 하고, 아직은 너무 어리기에 한국에서도 선행 학원은 안 보내기로 했다. (초등이 무슨선행? 싶다가도 대치동에 초등 의대생 준비반이 있다니 말다했다)


이곳에도 국적을 불문하고 높은 학구열의 부모들을 만나게 된다. 방학을 이용해 다른 영어권 나라로 단기 캠프를 가거나, 외부 써머캠프, 선행학원을 보내는 집도 많고, 또 인근 국가로 한 달 살기를 떠나는 집들도 더러 있다. 모두 자기 생각에 따라 결정을 한 것인데,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볼 때면 왜 이렇게 내가 한 결정에 뚝심을 박지 못하고 뒷북쟁이+팔랑귀 인형탈을 뒤집어쓴 채 불안감과 부러운 마음에 휩싸이는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향해 후회를 쌓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딸도 나도 한국에 가면 그리웠던 친구들을 만나 다시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특히 딸은 사촌 언니와 마라탕, 다이소 쇼핑, 플라잉 요가도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 외에도 자기가 직접 계획한 대로 할머니와 동대문 시장투어, 할아버지랑 옷 쇼핑, 가보고 싶다던 미술학원도 다녀보고, 여행도 가고 재밌게 한국생활을 누릴 예정이다.


그저 나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내 손에 휴대폰만 꽉 붙잡은 채 너는 너의 할 일을 알아서 하라는 식만 아니면 되겠지 싶다. 아이의 심심함과 내 휴대폰 중독 사이 그 어느 지점에서 부디 힘을 좀 빼고 우리는 우리 결 대로 잘살아보자고 다짐해 본다. 잘하고 있다는 믿음, 우리만의 속도가 결국 제일 중요할 것이다.


지난 내 학창 시절 내 방학을 떠올려보면 엄마가 무언가를 어찌했던 건 기억 안 난다. 그저 신나게 놀았던 바다와 꾸준히 남겼던 일기장과 필름 사진 그리고 탐구생활 속 그 어떤 것을 해내서 뿌듯했던 경험이 남았다.


오늘은 볼펜 타투샵 오픈. 누워 있으면 허벅지에도 해준다. 꿀이다.


아이의 방학이 두렵다면, 조금 힘을 빼보자.

우리 속도 대로.

매거진의 이전글 깔끔한 아내, 지저분한 남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