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당미라는 말은 없는 걸로
무슨 한옥채 이름같기도 하구먼
이환 장, 이허 당
잘 잃어버리고 잘 까먹는다. 남들보다 조금 더 덤벙대는 인간이다.
통장 개설하는데 신분증을 안 가져간다던가.
여권갱신하러 가는데 여권사진을 깜박한다거나. (진짜 대체 뭐 어쩌자는거지?)
입장티켓을 내가 갖고 있는 축제에 지인을 다 초대했는데 티켓을 두고 집을 나선다거나.
민망 혹은 민폐스러운 일들인데 안타깝게도 늘 언제나 어느 정도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속한다.
끌끌 혀를 차지 말아 줘요. 내가 제일 속상하다고요.
아무래도 내 뇌의 케파를 10-20대에 다 쓴 걸까?
그나마 여태껏 비행기 놓친 적 없고, 애는 안 잃어버렸다며 위로하는 날이 다반사다.
그중 떠오르는 인생 실수 중 몇 가지는
고3 가을. 수시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면접장을 갔는데 아차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간 것이다. 그때 엄마에게 그야말로 등짝 스매싱을 맞았는데... 이후 기억이... 없다. 아파서가 아니라 너무 놀라서 기억이 사라졌나 싶다. 꿈이었나 싶을 정도지만 어쨌든 신분증을 안 가져 간 건 사실이고 결론적으론 어찌어찌 신분이 확인되어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최근엔 아이가 학교 수영클럽에 가입하여 열심히 운동을 하던 어느 날. 수영 끝나면 바로 김밥을 먹고 싶다길래 전화로 동네 김밥집에 주문하고, 픽업 후 학교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학교를 거의 다 와가는 시점에 전화벨이 울린다.
"김밥 픽업 언제 오세요?" 아하하하!!!!!!!!!!
"아우! 사장님 너무 죄송해요!! 미쳐요 아우. 제가 말이에요 지금.. !@#$%^"
김밥 전달이 주목적이었는데 나는 그냥 룰루랄라 맨몸으로 갔던 것이지. 속으로 얼마나 많은 자책과 욕을 웅얼거리며 그 길을 돌아갔던지...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사고는 돈사고가 빠질 수 없쥬.
남편 주재원 발령 전, 앞으로 1년 치 아이 책을 미리 준비해야겠다며 당근으로 전집을 사모으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던 책들이 매물로 나온 걸 발견! <저학년 문고 100권 : 36만원>
채팅으로 구매 의사를 밝혔고 판매자분께서 친히 집으로 배달까지 해주시겠다며 아들분과 함께 우리 집까지 오셨더랬다. 근데 운반 중 챙겨 오신 카트 바구니가 깨지고, 나는 그게 또 죄송스럽고, 책 권수는 확인해봐야 하니 세어보고 뭐 그런 일반적인 분주한 상황 중에 현금을 전달드렸다. 마침 출국 전 환전 때문에 집에 현금을 구비해 둔 터였다. 주섬주섬 봉투를 열고 한 장~두장~ 총 서른여섯 장을 세심히 세어 돈을 봉투째 전달해 드렸고, 열흘 뒤... '당근~당근~당근~' 당근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메세지 확인했어요.
안녕하세요. 메세지 확인했어요...?
처음 읽고도 무슨 상황인지 몰라 세상 차분한 나란 인간.
반면 같은 번호를 계속 계속 보내시던 판매자.
1만 원짜리 36장이 아니라, 5만 원짜리 36장을 건넨 것이다.
아니 뭐라고?
5 곱하기 36.. 아우 곱셈도 잘 안되네.
그러니까 나는 36만 원어치를 사면서 180만 원을 드렸네.
144만 원을 더 드린 것.
아하하하하하하.
장담컨대 연락 안 해주셨으면 난 영영 몰랐을 테다. 복도 많지. 아 남편이 나중에 돈이 모자라다며 나를 의심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려나. 오우... 최악의 사태를 면하게 해 주신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해야겠다. 대화 후 당일 바로 나머지 돈을 다시 입금해 주셨고, 나는 너무 감사하고 또 죄송하다고 따로 케이크 기프티콘을 전달드린 걸로 마무리했더랬다. 정말 두고두고 생각나고 어이없고 창피하고도 감사한 에피소드.
다시는 이런 일이 내게 없으면 좋겠는데...
그간 나는 또 얼마나 많은 허당력이 올랐는가. (쓸데없이...)
다시 한번 정신을 똑띠 차려야겠다고 되새기며 좌우, 우로, 한바퀴 삐잉 목뼈 스트레칭을 한번 해본다.
이걸로 되겠냐마는...
뭐 이것 말고 달리 어쩌겠어?
그만 올라. 내 허당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