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 난 백수인데 왜 늘 써야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는지. 근데 시달리기만 하고 행동으로 잘 옮기지 못해 불어 터진 면발처럼 맛없는 부채감만 안고 있다. 자기 전에도 침실에 일기장을 갖고 들어가긴 하는데 펜 들기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다음날 혹은 다다음날 있었던 일들을 되새기며 남기는 날이 다반사다. 분명 시간이 없어서 못 쓰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있을 뿐 오래도록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않고 있었다.
근데 오늘 여러 악플과 맞서며 운동일지를 올리는 한 초고도비만인이 <One day or Day one>이라고 써놓은 피드를 보고는 앗. 이런! 싶었다. "이이이런!! 그렇지. 이거지. 이런 흐물 맹탕거리는 게으른 나 자식아!"
오늘이 Day 1 인 것이야.
6월 중순경 아이가 방학하고 나서 한국에 머물며 여유롭게 정리 좀 할 수 있겠지 하며 랩탑도 챙겨갔는데 하나도 쓰지 못했다. 괜히 양치하는데 갖고 들어갔다가 떨궈서 40만 원 넘는 수리비만 지불했다. 아 내 돈!! ㅠ
남편과 약 2주간 호텔에 머물렀을 때는 병원, 친구약속, 쇼핑하느라 바빴고, 남편이 먼저 귀국한 뒤 부모님 집에 머물기 시작했을 때는 동생네가 셋째를 출산하는 바람에 조카 2명과 함께 부모님 집에 머물며 그야말로 대환장쇼였다. 기본적으로 60대 부부와 시집간 딸, 그리고 10세 손녀의 조합도 나름 난이도가 있는데 거기에 기저귀+턱받이 조합의 3세 손자와 나름 첫째 형이라고 철든 소리와 동시에 미운말을 쏟아내는 6세 손자의 우당탕탕타르탕탕탕 아파트 생활은... 아...
10세, 6세, 3세에게 어지르지 말라는 깔끔쟁이 무릎 아픈 할아버지.
삼시세끼 꼭 챙겨먹여야 성이 풀리시는 허리 아픈 할머니.
사랑과 관심을 양보해야 하는 10세 딸.
누나를 너어무 좋아하면서 동시에 놀리고픈 에너지 넘치는 6세.
흘린 침으로 동선이 파악 가능한, 밤마다 깨서 우는 3세.
정말 힘들었다...
부모님은 더 힘드셨겠지...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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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와 우리 집이야!!!
아직은 돌밥돌밥 방학기간이지만 일주일만 더 있으면 아이도 개학이라 내 시간 시동 걸기 전 다시 루틴과 작은 계획들을 세워 실천하는 중이다.
사마귀 치료 때문에 잠시 쉬는 러닝 대신 홈트로 운동 유지 중.
냉장고 속 재료로 건강한 밥 차려먹는 중.
샤워할 때, 기상 직후, 취침 전 폰 멀리하는 중.
아이에게 버럭 화내는 대신 화가 난다고 말하는 중.
자기 전 감사한 것들을 곱씹어 보는 중.
대단한 결단도 아니고 그냥 순간 후다닥 시작만 하면 되는 것들이다.
잘 유지하는 8월이 되길.
역시 지금/당장/Day 1의 힘은 결코 적지 않다.
끝으로 최근 읽고 있는 '마음 지구력(윤홍균)'에서 너무 공감 가는 구절이 있어 함께 남겨본다.
구체적인 현실주의자가 되는 방법.
정신이 중요하긴 하지만 시선은 늘 현실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바꿀 해결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시험 준비를 하는데 의욕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다면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부터 체크해야 한다. (중략)
첫째, 마음보다 몸에 집중하자. 우리가 먼저 챙겨야 할 것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경지의 정신력을 초고수가 된 뒤에 신경 써도 된다. 팔, 다리, 몸통, 위장과 심장의 건강을 유지하고, 뇌에 혈액 공급만 원활하게 해도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 몸에 좋은 행동을 많이 하고, 몸에 나쁜 행동을 빨리 끊는 것을 목표로 삼자.
둘째,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에 몰입하자. 과거에서 배우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현실을 외면할 때 생긴다. 후회하는 것을 끊거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자고 결심하는 것이 좋다. 무언가를 하지 말자는 부정적인 목표는 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게 책이면 책을 읽고, 침대면 빨리 눈 감고 잠을 청하자. 하루에 5분이라도 현재에 몰입하는 연습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