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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주 Nov 09. 2024

나에게는 내 삶을 정의할 수 있는 한 단어가 있을까?

나를 성장시킨 책

1. 성장과 성취에 기뻐하며 주로 앞으로 뛰는 삶을 살아왔지만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은, 고유함과 유일함을 갖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요즘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장르가 되어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연대하는 사회, 책 <시대예보>의 두 번째 시리즈는 이를 '호명사회'라 정의했다.  


2. 개인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나 싶지만 분명 우리에겐 개인보다 조직이 앞선 시간들이 있었다. 좋은 조직에 소속돼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 그 안에서의 더 높은 직급, 직위를 위한 치열한 싸움, 그런 것들이 대다수의 인생일대의 목표이자 목적이던 시대.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자리'는 한정돼 있으니 몇 개 없는 밥그릇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3. 그러나 시대는 고여있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는 것이라 변화의 물결은 아주 잔잔히 일고 있었고, 최근 몇 년 전부터는 그 변화의 흐름은 가속화되는 듯 보였다.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조직의 권위는 힘을 잃어가고, AI는 학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학습하며 다수의 직업을 집어삼키고 있다. 책은 말한다. "공동체적 권위주의에서 핵개인의 시대로 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에게 일생에 걸친 더 많은 기회가 허락되고 있다는 새로운 축복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4.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잘 살리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책 전반을 관통하는 개념은 '호오'와 '조예'다. 호오의 사전적 정의는 '좋음과 싫음'. 해도 해도 또 하고 싶고, 남들이 별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아야만 한다.


5. 20대에는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 줄 몰랐다. 커리어에 관련된 것은 물론이고, 내 삶 전반에 취향이랄 것이 없었다. 그땐 "난 이러이러한 스타일을 좋아해"라고 확신에 차 말하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나를 알고 싶었다. 나를 이해하고 나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넓게 넓게 팠다. 다양한 유형의 직장을 선택했고, 직장 안에서도 최대한 여러 직무를 맡아보려 했다. 일 외에 영역에서도 닥치는 대로 경험했다. 전시 하나 보기 위해 지방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경험에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30대에 들어서자 호불호가 생겼다. 그러자 모든 선택과 결정의 시작점에 내가 서게 됐다. 좋아하는 것을 아는 것, 그게 시작이었다.


6. ‘호오'에 축적의 시간이 쌓이면 '조예'가 깊어진다. 호오와 조예를 기르기 위해서 '축적'은 필수다. 그 과정에서 겪은 모든 시행착오들이 자신의 무대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생각해 보면 조직의 시대에도 우리는 성실했다. 단, 핵개인의 시대와 다른 건 방향을 알고 성실하냐, 방향을 모르고 성실하냐의 차이. 책에 따르면, "흩어지는 것이 아닌 축적되는 것에 에너지와 자원을 집중하여 갈고닦는 것"이며 "천천히 뿌리내리는 나무처럼 자신의 호오, 조예, 전문성, 퍼포먼스가 시계열로 쌓이면 비로소 팬덤이 형성되고 이는 곧 자립의 기반이 된다".


7. 호오와 조예를 가진 이들은 더 많은 확장의 기회를 얻게 된다. 여기서 나오는 매우 재미있는 개념이 ‘연대'다. 혈연, 학연, 지연으로 이어진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쌓은 축적의 시간을 공감하며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 각자의 이름을 찾은 이들의 모임이다. 느슨하지만 또 긴밀하다. 느슨하기만 한 관계도, 촘촘하기만 한 관계도 건강하지 못하다. 너무 헐거워서 흩어지고 너무 팽팽해서 끊어진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연결된 느슨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8. 눈여겨 본 호명사회의 마지막 키워드는 '배움'이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것이, 조직의 시대에는 20대까지의 성취가 미래의 창창한 앞길을 담보했었다. 태어난 곳, 나온 학교, 들어간 회사 등. 태어난 후 초기 20년 바짝 이룬 것으로도 지속 가능한 인생이었기에 굳이 시간과 돌여 들여 배우지 않아도 괜찮았던. 그러나 이제는 개개인의 조예와 전문성으로 살아야 하는, 얼마나 '깊은가'로 싸워야 하는 시대라면, 끊임없는 성찰과 배움을 통한 성장만이 유일한 생존법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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