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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주 Oct 20. 2024

좋은 사람이 아니여도 괜찮아

나를 성장시킨 책


1. 성격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말해주곤 했다. 성격 좋은 사람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맙고 감사했다. 누군가 나에게 성격 좋다는 말을 했다는 건, 상대방이 내게 전하는 호감과 믿음의 표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는 언제나 잘 참고, 양보하고, 이해하는 어른스러운 사람이라, 그렇지 않은, 예를 들어 참고 싶지 않고, 양보하고 싶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그래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좋은 사람' 강박관념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2.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삼으면서 나는 더욱더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감정을 절제하고 기분이 상한 상황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타인에게 날 선 표현을 하지 않도록 단어를 신중하고 세심하게 고르는 사람. 우리 업계에서는 그런 사람을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은 사람이라 불렀다. 내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수치스럽고 무력한 기분이 들었지만,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좋은 성격이 해가 되는 순간보다 득이 되는 상황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왔다.


3. 그런 사람으로 30년 넘게 살아오다가 어떤 사건을 겪었다. 사건은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좀 더 날카롭게 발톱을 치켜들고 스스로를 비호하지 않았던 게 아직까지도 후회된다. 살면서 후회한 일들이 별로 없었는데, 누군가가 "죽기 전에 후회가 됐던 순간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 사건을 말할 정도다. 참고 이해하는 습관이 덜 됐다면 좀 달랐을까. 나는 이후 좋은 성격의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연습을 했다. 더 이상 좋은 사람이 아니여도 괜찮았다. 이제는 남보다 나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길목에서 이 책을 만났다.


4. 성격 좋다는 말 뒤에는 나만 아는 진짜 마음과 감정이 있다. 심리상담가인 저자 또한 타인의 욕구를 알아차리는 데 전문가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 깊숙이 존재했던 욕구와 감정을 돌보는 데는 서툴렀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불편한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주위 사람들에게 '성격 좋은 사람'으로 불려 온 저자가 자신의 마음을 침묵 속에 가두지 않고 드러내는 연습을 하며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 한 권이 마치 완주를 위해 함께 달려주는 페이스 메이커 같은 느낌이 들었다.


5. 자신이 느끼는 날것의 감정과 생각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여러 환경적, 심리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책에 나온 심리학 이론 중 가장 공감이 됐던 '상전과 하인'이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은 엄한 선생님 같은 '상전'과 다정하고 친절한 '하인'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눠져 늘 갈등하는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상전은 '해야만 한다'는 당위나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기준을 들이대며 나를 닦달한다. 그래서 그 아래에 있는 하인의 목소리는 상전의 눈치를 보느라 잘 드러나지 않는, 억압된 바람이나 감정일 때가 많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인정욕구가 컸던 나는 상전의 비율이 하인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라'는 말을 신봉했던 때도 있었을 정도. 나에게 '좋은 성격'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으레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 같은 것이었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했던 그 사건은, 오랜 시간 '상전'의 그림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내 안의 '하인'이 이제 자신을 봐줄 때라고 처음으로 목을 놓아 부르짖게 만들었고,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내 진짜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6. 좋은 성격의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연습을 하며, 가장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남에게 숨기고 싶은 못난 내 감정들, 이를 테면 옹졸함, 짜증, 질투, 두려움, 소심함 같은 감정을 느낄 때도 괜찮다고 다독이고 안아주려 애쓴다. 그런 감정이 드는 것 당연하다고. 이전엔 이런 감정들이 들 때면 '어른스럽지 못하다'며 '더 큰 그릇의 사람이 되자'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비난했다.


7.  내 욕망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지금 뭘 원하고, 뭐가 불편한지, 그리고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전엔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냥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도록 최대한 양보했다. 솔직히 살면서 '정~~~ 말' 중요한 일이란 게 얼마나 될까? 수많은 소소하고 시시한 순간들이 모여 정말 중요한 순간을 만들거늘,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욕망을 숨기기 시작하면 정작 중요한 순간에 솔직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배웠다.


8. 웃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는 웃지 않으려 한다. 의미 없는 농담, 불쾌한 농담에도(많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웃지 않으면 타인이 무안해할까 봐 옅은 미소라도 지어주곤 했다. 예상했겠지만, 상대방은 다음번 또 의미 없고 불쾌한 농담을 한다. 내가 웃어주었기 때문에. 웃을 일이 아닌데 민망함에 웃어넘기려는 것 또한 이제는 하지 않는다.


9. 내가 전혀 동의하지 않는 의견에는 침묵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상대방은 생각하겠거니 했지만, 침묵하면 자신의 의견에 동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비상식적이고 무례한 상대방,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상황에서는 단호하게 말하는 연습도 하고 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앞으로 미는 남자가 있었다. "저기요, 앞으로 가고 있잖아요 밀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더 심하게 밀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이 무례한 사람에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을 용기내어 해봤으니까. 거절당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원하는 것을 표현해 본 경험들이 쌓여 강하고 단단한 마음을 만든다.


10. 30년 넘게 상전의 목소리를 따랐던 나에게, 하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여전히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고 서툰 일이다. 책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몇 번을 곱씹은 문장이다. "좋은 당신이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부지런히 오간다면, 비는 새로운 길을 타고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오래 했기 때문에 익숙한 길 옆에 새로운 길을 나란히 내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새로운 길의 흔적조차 미미할 수 있다. 하지만 부지런히 새길로 발걸음을 옮긴다면, 오래된 길과 새로운 길 모두 물이 흐르기 좋은 길이 될 것이다. 오래된 레퍼토리를 자동적으로 쓰는 대신, 새로운 레퍼토리도 그만큼 수월하게 쓸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이제 막 만들고 있는 새로운 길이 익숙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곧 이 새길 또한 익숙한 길이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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