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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덕 May 07. 2022

[종덕글귀] 나의 해방일지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

 요즘 나의 힐링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심심한 듯하면서 심지어 드라마에 비치는 현실이 숨 막힐 듯 답답하기까지 한데, 분명 힐링이 되는 드라마이다. 다음 화가 계속 궁금해서 한 자리에서 끝내버리는 그런 드라마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하루에 한 편씩 보고 싶은 드라마. 내가 그들에게 공감할 만큼 힘든 현실을 살고 있나 한다면, 아니. 어쩌면 나보다 힘든 그들의 삶을 보면서 '아, 나는 괜찮구나' 나 정도면 힘든 것도 아니지 하고 안심이 되는 걸 수도 있고, 내가 겪었던 이따금의 고통들에서 잠시나마 그들의 감정을 공감하는 걸 수도 있겠다.


 특히 나는 이 드라마에서 염미정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늘 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일상을 버텨내고 있지만, 회사에서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미소를 머금고 여느 다른 사람들과 같이 평범하게 평온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 표정이 대부분의 우리가 아닐까. 염미정은 지금까지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지만, 우리 모두에게 그런 시기가 한 번씩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어느 때보다 지치는 시기. 우리들은 그때를 장난 삼아 '노잼 시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노잼 시기가 염미정에겐 평생이었던 셈이다.


 염미정은, 그리고 그런 우리들은 어딘가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어디, 어디에서 해방되어야 할까. 아무리 노력해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 매일을 겨우겨우 먹고살아내야 하는 경제적 상황? 아니면, 가만히 있는 나를 참 다양한 말들로 지치게 하는 사람들? 그나마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에게 맞닥뜨린 여러 상황적인 문제들은 우리가 극복하기엔 너무나 차가우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가족들,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드는 고작 몇 년 더 살았던 어른들. 그리고 가끔은 나의 해방 통로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또 가끔은 그 누구보다 나를 좌절시키는 친구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에게서 해방되려면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그 사람들에게서 도망친다고 거지 같은 나의 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마저도 그리울 만큼 외로워질지도. 그런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려면, 나를 채워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염미정이 그렇게 원했던, 자신을 채워줄 누군가. 염미정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 의지하기도 하고, 결국은 구씨에게 내가 채워지도록 추앙하라고 하기도 한다. '추앙'이라는 단어를 사람의 입에서 들은 게 처음인 것 같은데, 매우 이질적이면서 그만큼 인상적인 장면이 되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 적은 있지만, 추앙한 적이 있던가? 추앙.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 염미정의 "사랑으론 안돼, 날 추앙해요." 이 말에서 얼마나 채워짐에 대한 간절함이 큰지 느껴진다.


 아직 드라마의 뒷부분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염미정도 구씨라는 인물과 함께하면서 해방될 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가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아니면 추앙이든. 사람 간의 감정이란 대단한 것 같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 하나로도 내 인생 전체가 망가지기도 하지만, 또 나를 가득 채울 만큼 사랑하는, 사랑받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어떤 시련도 죽고 싶을 만큼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은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서로를 채워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그냥 모든 관계가 지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또 다른 관계가 찾아오길 바란다. 그동안의 관계는 아무 상관이 없을 정도로, 지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는 또 다른 관계가. 나를 가득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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