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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꽃 Aug 31. 2020

 유일한 해답,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독후 에세이 

나는 깊이 살아서 인생의 정수를 남김없이 쭉 빨아들이고 싶었고, 
스파르타인처럼 씩씩하게 살면서
인생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죄다 파멸시키고,
폭넓게 인생의 뿌리까지 잡아 뽑으며
 생활을 구석구석 뒤쫓고 밑바닥까지 바짝 다가서고 싶었다.
설령 인생이 별 볼일 없음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 진정한 별 볼일 없음을 완전히 손에 넣어
 세상에 공표하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독일의 겨울밤은 길다. 서머타임이 끝난 늦가을부터 봄까지 오후 4시만 되면 해가 져서 길거리부터 스산하다. 그래서 독일에서 겨울을 난다는 건 긴 고독에서 이겨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독일에서 겨울을 보내고 왔다는 말에 이를 잘 아는 주변에서 걱정스럽게 “괜찮았니?”라고 물어볼 정도다. 


 작년 가을 홀로 베를린으로 떠난 나는 자발적인 고립을 기꺼이 택했고 4평 남짓한 베를린의 방에서 내 불안한 미래와 함께 싸워야 했다. 영어도 아닌, 제2 외국어인 독일어로 먹고살기를 꿈꾸는 건 허상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난 내 천성에 따라 길을 택했기에 고독해도 자유롭게 5개월을 지냈다. 

그런데 올해 3월, 한국에 입국했을 때 많은 것이 변했음을 알았고 거의 모든 것들이 강제적인 고립과 싸우고 있음을 보았다.     





 <월든>은 자발적인 고립을 택한 한 젊은 청년의 일기다. 28세 소로는 모든 군중과 소음에서 자유로워지리라는 선포라도 하듯, 폭죽을 터뜨리는 군중이 가득했던 7월 독립기념일에 홀로 월든 호숫가로 향했다. 모든 것이 상업 주의화되던 그때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삶이 온전히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실험’한 이 대담한 청년의 2년 2개월의 기록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필독서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를 고민하게 하고 난처하게 하고 혼란하게 하는 문제는 예외 없이 고대의 여러 현인들에게도 따라다녔을 것이다. 현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그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말과 인생을 가지고 대답해온 것이다. 
<월든> 150쪽                                               



 소로는 ‘지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많은 문제들을 놀랍게도, 예외 없이 고대의 현인들도 겪었으며 

그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우리에게 제시해 준 것이 그들의 책’이라고 했다.

이처럼 밭을 가는 소가 주춤거릴 때 농부가 막대기로 옆구리를 찌르듯,

한 발자국 나아가게 만들어줄 묵직한 자극이 필요한 때가 우리에겐 지금 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자발적이기도, 강제적이기도 한 고립된 사회 속에서 우리의 아주 익숙했던 모든 일상에 균열이 왔다.

우리는 이 고립 속에서 무엇을 답으로 구해야 하는가? 소로는 삶을 ‘실험’이라고 표현하였고 

우리는 실험에 충실하게 몰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 몰입은 다름 아닌 “주어진 본분을 받아들이고 현재 속에서 사는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현재를 놓치고 사는가에 대해 소로는 한 농부 이야기를 한다.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에서 소로는 밭을 가는 한 농부를 지켜봤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밭을 가는 소를 끌고 있는 농부를 보고 있었는데, 그는 그 광경을 보며 사람이 아니라 소가 사람을 끄는 느낌을 느꼈다. 농부는 일하기 위해 소를 사고 더 일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늘 무언가를 마련하기 위해 더 많이 수고하고 노동한다. 그리고는 결실을 수확하는 작업을 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다. 이런 실수들로 인해서 사람은 인생의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 그날 하루를 열심히 살아갔을 때 그 사람이 느끼는 영혼의 성장 같은 것들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주 모험의 유혹에 빠지곤 한다.

이직을 꿈꾸고, 해외 이주를 꿈꾸기도 하며 이곳이 아닌 어느 곳인가에 우리를 위한 낙원이 존재하리라는 막연한 소망을 늘 마음에 품고 산다. 자유, 독립과 같은 이상도 이곳에 이르러서야 만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현재 강제적인 고립으로 인해서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깊숙이 발을 딛고 이 순간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를 동요시켰던 많은 허상들이 안개 걷히듯 걷혔다. 미래를 꿈꾸었던 그 소망들이 체념되는 건 안타까우나, 그로 인해 우리가 현재에 더 충실하게 되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칫 우리는 어딘가 멀리에 있는 순간의 환경이 자신에게 좋은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기 쉽다.
하지만 그런 환경은 오히려 우리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릴 뿐이다.
 만물 바로 가까이에 사물을 탄생시키는 힘이 우리들 바로 옆에서 존재하고 있다. 

 <월든> 125쪽  


 독일의 대문호 괴테 역시 “현재 속에서만 영원을 바라볼 수 있다.”라고 했고,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그보다 더 강하게 “지금, 이 순간에 살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거짓말로 살고 있다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 만큼 삶은 소중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실재하는 것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다. 소로는 농장에서 얻은 총수입 23달러 44센트를 계산해 일기에 남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점, 예컨대 자신이 영혼을 소중히 다뤘던 것과 오늘이라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했던 것 등을 미루어보아 그 해에 자신이 콩코드에서 가장 성공한 농민이었다고 자부한다. 




 나는 자발적인 고립도 강제적인 고립도 겪으며 사람에겐 저마다의 월든 호숫가의 숲이 있음을 알았다.

 베를린에선 혼자여도 외롭다거나 우울해지지 않았다. 내 천성이 향하는 대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을 기록했고 내 영혼의 성장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사람들에 섞이면서 비로소 고독을 맞이했다. 알 수 없는 흐름에 순응을 하고 나 자신을 복종시키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본격적으로 독일어 공부를 시작할 때 즈음 우연히 취업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랬다. 정신을 차려보니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묶음 속으로 사라져 가는” 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나를 성장하게 했던 그 원동력과 소망을 다시 한번 좇아 나와서야 호숫가 옆에서 무너져 내리는 오두막을 재건할 수 있었다.  


 사람은 연약해서 쉽게 흔들리고 변질된다. 외부 환경으로 인해 내 본질을 잊고 불안에 잠식한다. 

한 독일 영화의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시킨다. 그러하기에 사람은 늘 끊임없이 영혼의 성장에 힘쓰면서 그 수단으로 좋은 책을 읽어나가야 한다. 소로가 이야기했듯 현인들은 이미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으면서 그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말과 인생을 가지고 대답을 해놓았다. 그래서 우리에겐 일종의 정신적인 수련의 과정으로 독서와 사유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지금 같은 때에 더욱 그렇다. 우리가 독립된 존재로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아가며 스스로의 의식을 늘 일깨울 수만 있다면 불가항력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난처해하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많은 어려운 과정 속에 우리 젊은이들이 봉착해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겐 더욱더 “조금 멀리 돌아가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강보다 어두운 무지의 심연에 무지개다리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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