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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꽃 Aug 31. 2020

여행을 하듯 삶을 연습하라

김영하  <여행의 이유> 독후 에세이

  

테이트 모던 갤러리로 가는 길 다리 위에서,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참 흐렸지만 이국적이었던 영국의 고건물들


런던 시내로 도착하고, 이후 그저 구글맵만 보며 숙소로 향했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 6층 카페 전경, 뷰가 좋기로 유명하다.






 올해 1월 중순, 나의 런던행은 망명에 가까웠다. 그러나 영국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으로 가는 그 전 날까지도 이렇다 할 짐조차 꾸리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누워 마음 저 깊숙이 올라오는 저항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독일 베를린으로 홀로 유학을 온 지 88일째였고, 독일에 허가받은 합법적 체류일은 고작 이틀이 남아있었다. 독일어를 전공했고 그 언어의 아쉬움이 남는다는 이유로 덜컥 올랐던 비행이었다.


 문제는 이 체류일을 연장하는 것이었는데, 이럴 때 유학생들 간에 통용되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유럽 국가 간 ‘쉥겐조약’을 이용하는 것으로, 비 EU 국가에 잠시 머무르고 입국을 해 90일을 다시 연장하는 방법이다. 독일  비자를 만드는 것 중 가장 수월해서 학생 비자와 같은 다른 비자를 현지에서 준비하는 유학생들에겐 ‘찬스카드’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오르게 된 2박 3일간의 영국 런던의 여정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공부하다 머리도 식힐 겸 가볍게 다녀올 수도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마음의 저항감이 강했다. 낯선 장소에 홀로 발을 디뎌야 한다는 그 중압감이 꽤나 많은 해외 여행길을 다닌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에 기함했다. 더욱이 홀로 13시간을 걸쳐 독일에 입국한 지 무려 3개월이 흘렀는 데에도 말이다.

그에 비하면 고작 1시간 남짓한 비행이었다.    

  

 “왜 사람은 여행을 하는가?”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는 그 답과 함께 여행에 관한 철학을 끊임없이 던져준다. 저자는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겪은 혼란과 실망이 그대로 ‘내면에 침전되어 있었다’고 표현한다. 그의 첫 해외여행은 중국이었다.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틀 안에서 상상했던 중국과 그  현실은 비교할 수 없이 달랐기에 정신적 멀미를 겪어야만 했었고 그 실망이 그대로 내면에 침전되고 만 것이다.


 나 역시 그 저항감의 근원에 첫 해외여행에서 겪었던 혼란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자와 같은 ‘이념적’인 성격의 충격은 아니었으나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대한 울렁증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 벌어지는 일들 말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일본 후쿠오카였는데, 4살 터울인 언니가 그러했듯 식구 없이 홀로 패키지여행을 가는 것으로 첫 해외여행 신고식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수많은 여행담들처럼, 나 역시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겪게 되었다. 일본으로 가는 여객선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지니고 있던 현금을 모조리 도둑맞은 것이다.


 정확히는 9천500엔으로 지폐로도 모자라 500엔 동전까지 가져간 소매치기의 몰인정함에 목 놓아 울고야 말았었다. 숙소와 식사는 패키지여행이니 큰 걱정 안 해도 됐었지만 그 당시엔 세상이 무너지듯 눈앞이 깜깜했었다. 심지어 일본 땅을 아직 밟지도 않은 채 눈뜨고 코 베인 격이니 분통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때의 충격은 고스란히 내 마음 저 편에 침전되어 낯선 곳을 향할 때면 늘 주저하게 만들었다. 15살 어린 나이에 경험했던 그 무력감이 생각보다 컸었나 보다. 이처럼 여행은 종종 우리의 초행길을 고달프게 만드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놓음으로써 극적인 결말을 선사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그런 담력체험 덕분에 나는 여행길을 오를 때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고행을 해야만 했다. 이것은 일종의 고독한 싸움이었는데 그러나 감사하게도 매번 이기는 쪽은 현재였다. ‘사다리 걷어차기’처럼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그어두는 나의 빗금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아갔다.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나가는” 여행자로서의 작업을 거듭한 것이다.

 





 한 번은 결국 런던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는데, 하마터면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칠 뻔한 일이었다. 그저 앞사람이 독일어를 한다는 이유로 베를린 노선이 아닌 오스트리아 빈 노선 공항철도를 타고 만 것이다. 우연히 들리던 독일어가 베를린 현지인의 독일어였는지 오스트리아풍의 독일어였는지 구분을 할 실력도 여유도 없었던 터였다. 공항직원이 급하게 열어준 vip 통로를 통해 보딩 타임 5분 전에서야 베를린행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이륙하는 비행기 창가로 밤 구름을 바라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결국 제대로 되었구나’하는 안도감에 마음을 쓸어내렸다.


 재미있는 것은 삶 역시 여행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현실이 건재할 것이라는 소망과 다르게 삶은 그것을 비웃듯이 빗나간다. 어느 때엔 그 불확실성이 두려워 아예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이 길은 맞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돌진했지만 결국 후퇴하고 마는 때도 있다. 삶의 불확실성은 우리로 하여금 종종 불만이나 두려움에 휩싸이게도 만들고 가끔은 되려 돌파할 힘을 기르게끔 북돋아주기도 한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여행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비아토 르’의 시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은 삶을 쾌적하게 살아가는 데 분명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인생도 여행도 결국 예측 불가능한 일들 속에서 뜻밖의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어내고 향유하는 과정이다. 이때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섣부르게 예측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길,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진 여행의 본능은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다. 즉, 여행을 통해 우리는 삶을 연습할 수 있다. 여행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우리 스스로를 현재에 머무르게 단련시켜준다. 길 위의 날들이 쌓이고 쌓여 생각으로 저장되고 결국은 한 인간을 더 나은 인격체로서 고양시켜준다.


 나 역시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여행을 통해 이겨나갔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한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낯선 환경에 자립하고 대처하기엔 나약하다는 일종의 자기 암시였으며, 여행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어김없이 내 내면을 잠식하던 종류의 관념이었다.








 또한 여행은 한 인간을 고양하는 작업인 동시에 생각과 사색에도 일조하는 역할을 한다. 일상의 철학자로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은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은 생각의 산파(産婆)”라고 했다.



풍경을 가로지르는 열차 안에서 여행객은 일상적 자아 밖으로 나와, 안정된 환경에서라면 얻기 힘든 생각과 기억에 접근하게 된다. 움직이는 비행기와 기차는 종종 저 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곤 한다. 굉음을 내며 이내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떠올릴 때 역시, 우린 묘한 해방감을 느끼곤 한다.


 

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창가에서, 날씨가 좋았다.



 알랭 드 보통이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했듯, 여행 속에 느끼는 해방감으로 침전된 자아가 해소되고 결과적으로 좀 더 성장한다. 비행기 창가에서 구름과 함께 점보다 작아진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무겁게 가라앉아 굳어버린 상념들도 이내 먼지처럼 느껴지곤 한다.



  여행에서, 더 나아가 삶 속에서도 간소하게 현재를 즐길 수만 있다면 일상 속에서 괴롭히는 많은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 때문에 아직 여남은 시간들을 흘려버릴 순 없기에, 조금 더 눈앞의 풍경에 경탄하고 바람 냄새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여행을 통해 삶을 공부한다. 좋은 소설이 독자의 내면을 서서히 변화시키듯이 좋은 여행은 여행자의 내면을 천천히 바뀌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에 언제나 우린 여행을 마치고 늘 일상으로 다시 스며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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