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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꽃 Mar 30. 2021

신갈나무처럼 천천히 자라가는 것

<신갈나무투쟁기>를 읽고 난 뒤 짧은 기록


천천히 자라는 성정을 타고난 나무가 있다. 숲에서 도토리 열매를 맺으며 우리가 흔히 '참나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신갈나무다. 타고난 기질만으로도 이 나무에게 고된 삶이 약속되어있건만 주변 상황마저 녹록지 않다. 


 어미 신갈나무가 서 있는 곳에는 잘려진 그루터기에서 살아남은 볼품없는 식구들이 궁상스럽게 모여 있다. 하지만 땅속뿌리는 어느 가문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굵어지고 강해져 있다....
 멋지게 폼나게 살고 싶은 것이 바람이었지만 운명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버티기로 작정한 지 오래다. 잘려진 줄기에 더 많은 가지를 내밀어 반항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갈나무가 모질게 버텨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어미의 이런 저항정신은 바로 자식들에게도 이어져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생존력을 물려주었다. 

숲 속에서 신갈나무와 함께 견줄 수 있는 키 큰 나무가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나무이다. 소나무는 그 쓰임새로 인해 가치 있는 나무로 적극적인 보호를 받아 왔다. 오죽했으면 조선시대 산림정책은 과히 소나무 정책이라 할 만큼 소나무 보호 육성에 치우쳐 있었다고 한다. 소나무가 아닌 나무는 '잡목'으로 분류되어 잘려나갔다. 하늘을 향해 높이 30여 미터에 이르며 소나무만큼 뻗어나갈 수 있는 신갈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라리 아담한 덩치를 지녔으면 더 나았으련만, 신갈나무는 거대한 덩치와 생명력마저 기약 없이 묻어둬야 했다. 그리고 잘린 밑동만을 남겨두고 오랜 세월을 걸쳐 뿌리로 커나간다. 



전국 높은 산의 중턱 이상에 울창한 숲이 있다면 대개 신갈나무숲이다. 신갈나무는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계곡보다는 산등성이에 많이 자란다. 열매는 먹고 줄기는 표고버섯 재배용 골목, 숯의 원료로 쓴다.  높이는 약 30m까지 자란다.

출처 '산림청'


소나무뿐 아니라 이제는 주변 나무들도 제 갈 길이 정해져 있다는 듯 빛을 향해 하늘로 뻗어나갈 때에도 신갈나무는 그저 열매를 흩뿌리며 기다린다. 그런 신갈나무에게도 타고난 힘이 있으니 다름아닌 '생존력'이다. 특히 산불이 나거나 그 어떤 힘에 의해 가지가 손상을 당하면 곧 새로운 가지를 내는 힘이 무척 강하다. 이런 가지를 '맹아지'라고 한다. 이 맹아야말로 신갈나무의 강인한 생존력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속성이다. 맹아지는 자라는 속도도 아주 빨라 두세 가지 이상으로 뻗어 나온다. 해를 거듭할 수록 맹아지들이 굵어지며 거기에서 중심줄기가 출현하고 그 줄기 위주로 또 끊임없는 생장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맹아생장을 잘 하는 나무는 크고 오래 사는 나무들 중에 신갈나무가 단연 으뜸이다. 


고독한 숲의 시간을 버텨내는 힘이 인내라고 한다면, 그 인내 속에서 신갈나무를 살아가게 해주는 힘은 바로 이 맹아지이다. 어느 것 하나 제뜻대로 되지 않는 세월 속에서 홀로 커가는 신갈나무의 삶은 나무 스스로에겐 끊임없는 투쟁의 연장선이었을지라도 누군가에겐 풍족한 위로의 교재가 되어준다. 홀로 버티며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난 신갈나무처럼 잘 버티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더 나아가선 그 과정에서 내가 무기로 가꾸고 있는 맹아지는 무엇인가도 떠올려본다.


나무나 사람이나 세상과 잘 맞닿아있는 이가 있는 반면에 아닌 이도 있다. 그런 이들은 본연의 모습을 땅 속으로 깊숙이 덮어둘 수밖에 없다.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고 싶어도 인내해야 하는 그 수고로움은 단순한 성장통과 다르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가 지나고 고독했던 밑동에도 빛이 찾아들듯이 언젠가는 제 길을 알맞게 걸어갈 것이라는 걸 신갈나무를 통해 배운다. 가진 것이 많아지면 진지한 삶을 비웃게 되기에 오히려 결핍 속의 기다림은 나와 세상을 몸소 담아내는 배움의 시간이다. 곁눈질로 옆을 바라보기 보단 온 몸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나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는 맹아지를 키워나가길 고대한다. 봄의 문턱을 밟으면서, 나무의 삶을 통해 공감하며 위로를 받게 되는 요즘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나무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나무를, 자연을 그저 정신적 위안처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나무는 또 하나의 긴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무에게서 일어나는 살떨리는 삶의 현장들을 정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나무로부터 받는 위안은 도피적 위안이 아니라 지구상 생물들의 숙명적 삶을 이해함으로써 얻는 공감적 위안이어야 한다.

<신갈나무 투쟁기>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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