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극한직업 Jan 18. 2024

열두 번째 졸업식을 끝내고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고 3월에 또 만나

2021년 3월, 아직은 봄이라 부르기엔 한기가 매섭던 입학식 날, 너희를 처음 만났다. 코로나로 인해 신입생 OT도 하지 못하고, 반갑다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PCR 검사 결과를 먼저 확인해야 했던 때였다.

마스크로 가린 미소만큼 조심스러웠고, 조금은 거리가 느껴지던 시작이었다.


그러나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너희는 두 발짝을 다가왔다. 먼저 첫 발을 내디딘 건 나였지만 더 빨리 거리를 좁혀온 건 너희였다.

항상 내가 쏟은 마음의 두 배, 세 배를 돌려주는 너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매일같이 잔소리를 하고 때로는 야단도 쳤지만 그래도 지난 3년을 돌아보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처음보다 훌쩍 성장했더구나. 저마다 속도는 달라도 나름의 애씀으로 하루하루 나아가는 것을 알기에, 너희와 함께 한 시간들은 남김없이 행복했고 사랑스러웠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내레이션으로, 제15회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작은 학교의 졸업식은 소박하지만 가득한 정성으로 채워진다.

강당에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을 놓아 졸업생과 그 가족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그 성장 뒤에는 누구보다 마음 태우고 힘을 들였을 부모님들이 있기에 함께 축하해주고자 함이다.

온 마음을 담아 준비하는 졸업식

테이블 위에는 3년의 추억을 그러모아 만든 졸업앨범이 있다. 의미 있는 순간마다 찍어 남긴 수천 장의 사진을 샅샅이 뒤져서 학생별로 모은 뒤 그중 어여쁜 것들을 골라 개인앨범을 만든다.

많지 않은 인력으로 적지 않은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지만 앨범을 만들다 보면 지난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무얼 보고 무얼 먹었는지는 흐릿해도 그때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한때는 조금 더 대학의 분위기를 내보고자 전문업체에 의뢰를 하여 자본주의의 고급스러움으로 꾸민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기술력은 훌륭했으나 그들과 렌즈 너머 우리 아이들 사이의 어색함이 앨범에도 고스란히 실리곤 했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미소도, 우리가 공유한 순간의 행복도, 타인의 손을 빌어 기록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는 교사들이 한 땀 한 땀 사진을 찾고 앨범을 채우고 있다.


18명의 졸업생 소개도 고심하며 만든 개개인의 수식어와 각자에게 전하는 응원과 축복의 말들로 이루어졌다.

교사들의 마음을 담아 한 명씩 소개를 하는 사이 '래리'가 꽃바구니를 걸고 입장했다.

'래리'는 학교 내 애견직업훈련센터에서 기르는 개 중 하나로 이번 졸업식에 센터 대표로 졸업생에게 꽃을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처음 시도해 보는지라 기대만큼 멋진 장면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협조해 준 래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센터 대표로 선발된 래리

3년의 학교생활을 꾹꾹 눌러 담은 영상을 같이 볼 때면 아이들은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 웃어댔다. 제가 나와서 웃고, 친구가 나와서 웃고, 교수님이 나와서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금 우리가 즐거웠던 건 함께였기 때문이구나 깨닫는다.


벚꽃이 흩날리던 길을 자전거로 달렸던 봄, 푸르른 하늘 아래 잔디밭에서 즐겼던 캠핑, 기차를 타고 강릉에서 이르게 만끽한 바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직관하고 돌아오던 어둑한 귀갓길, 날이 흐려도 신나기만 하던 제주도, 긴장과 설렘 속에 도전했던 오사카 자유여행 등 제법 긴 영상을 빽빽하게 채우고도 다 못 담은 추억들이 잔뜩이었다.


졸업생들의 감사를 담은 편지 낭독과 선배들을 위해 땀 흘려 준비한 재학생들의 축하공연이 이어졌고, 015B의 <이젠 안녕> 노래가 흘러나오며 교사들과 졸업생들은 뜨거운 포옹으로 긴 마무리 인사를 나누었다.

한 명 한 명 마주한 아이들은 다들 눈시울이 붉었다.


“울지 마, 우리 3월에 또 볼 거잖아.”

“그래도, 졸업식이잖아요!”


장난스러운 타박에 당당하게 외치는 건 취업 대신 인턴쉽 과정을 택해 새 학기에도 볼 녀석이었다. 뿐만 아니라 취업을 한 아이들도 곧 신년회니 근로자의 날이니 하는 행사들로 다시 만날 터였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는 가사처럼 우리의 졸업식은 3년 과정의 마지막이지만 우리의 끝은 아니다.


졸업을 하면 보기 힘든 다른 학교와 달리 우리 학교에는 취업자를 위한 행사가 자주 열린다. 그리고 그런 날이 아니어도 졸업생들은 종종 학교를 찾아온다.

최근에는 직장생활을 1-2년 하다가 쉼을 갖거나 다른 전공을 배우기 위해 다시 편입을 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들이 2년 이하의 계약직인 경우가 많고, 평생직장의 개념도 옅어진 사회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졸업 이후에도 또 만날 기회가 많다는 것은 색다른 졸업식의 기분을 선사한다.

입사 초기에는 졸업식이면 아이들을 떠나보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는데, 12년간 이곳에서 근무하며 그때 눈물로 보낸 아이들을 아직도 만나다 보니 이제는 슬픈 작별인사보다는 조만간 다시 보자는 담백한 인사로 졸업생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나간 시간을 되짚으면 따라오는 아련함이 있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제자를 바라보는 애틋함은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아이들이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직장에 잘 적응하고 제 몫을 해내는 것은 오롯이 당사자들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과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인 우리 아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가르침에 전심을 쏟고, 부족한 솜씨로 틈틈이 글을 쓴다.




사회에 나가는 너희에게 앞으로 꽃길만 펼쳐지길 기도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작은 소망 하나를 간절히 바라본다.

호산나에서의 시간이 너희들의 삶에 소중한 한 페이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3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함께 쌓은 즐거운 추억들이 과거의 상처를 조금은 무디게 해 주고, 앞으로 마주할 어려움에 보다 단단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패가 되어주길.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 때면 다시금 꺼내 들추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기억이 되고, 언제든 찾아와 삶을 나누고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는 든든한 안식처가 될 수 있기를. 부디 바라고 또 바라며,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생 때도 가지 않은 클럽을 제자들과 가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