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60. 멀쩡히 세상을 활보하는 외조모의 뒷모습

by 풍선꽃언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언제쯤 내 안에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이 또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마땅히 거쳐야 하겠지만 혼자서 이겨내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든다.


발가락 골절은 꽤 성가시다. 수술과 입원은 잘 끝났고 오늘은 드레싱을 받으러 다녀왔다. 심을 박은 왼발 네 번째 발가락은 까딱이기만 해도 통증이 극심한데 지난 삼 주간 차도가 없었고 앞으로도 한 달, 길면 6주는 더 통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빠와 대동해서 이동하는 길은 좋다.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아빠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것 같다. 연로한(?) 아빠 운전수 만드는 건 미안하긴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었다. 초록색 잠바. 아빠가 먼저 알아보고 내게 물었다.

저거 너네 외할머니 아니냐?

내가 기억하는 외조모는 단독 보행이 불가한 사람이었다. 대퇴부 골절로 언제부턴가 보행 보조기를 짚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이었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의 모습도 그랬다.


좌회전하는 사거리 앞 횡단보도에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딜 보고 얘기하는지 아빠 시선의 끝을 따라갔다. 맙소사, 그곳에 멀쩡히 뒷짐을 지고 두발로 무려 "정상 보행"을 하고 있는 나의 외조모가 있었다.


갑자기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온몸이 화끈화끈 했다. 걷질 못한다며 엄마를 밑도 끝도 없이 호출하던 외조모께서 두발로 보행을 하다니! 저렇게 정정한 몸짓으로(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외조모를 길에서 만나면 반가운 게 보통의 경우 일 것이고, 건강하다면 감사한 게 인지 상정이겠지마는 내 경우엔 사기꾼한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정정한 몸짓으로 엄마에게 오만 덤터기를 씌우고 심부름을 시키고 먹을 것을 조달하게 해 놓고도 유년기에 엄마를 버렸던 사실을, 옛날 일은 다 잊으라 한마디로 없던 일 만들어버린 그 사람과 오열하던 엄마. 그 일이 있고 2주 뒤 더욱 쇄약 해져버린 몸으로 있지도 않은 적(피해망상)과 싸우다 실족사해버린 엄마. 장례식장에 도착해 당신이 엄말 좋은데 취직시켜 앵벌이 시킨 얘기를 떠들고 나와 눈 한번 마주치지 않던 외조모의 싸늘함까지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내 안의 분노를 덮고 싶다. 상처를 꿰매고 싶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과도 같아서 증오의 깊이만큼 나도 아프다. 그 사람을 보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부터 내뱉게 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다.


얼마 전 누군가 나의 브런치 글에 어머니가 외조모의 학대로 자살해버렸다는 댓글을 남긴 이가 있었다. 사랑받고 자랐으나 어머니는 아픔을 혼자 앓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다고. 위로하고 싶지만 위로할 말이 없었다. 힘내자는 말 밖에는. 내 안의 평화조차 찾지 못하는 내가 어쭙잖은 위로로 거짓 격려를 한다는 것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견뎌야 하는 것 같다. 그 사람을 대면했을 때조차 차가울 수 있도록. 감정의 요동이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행복하세요"


내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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