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는 영화관에 같이 갈 때마다 전쟁이었다. 예를 들자면 열 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여덟 시부터 준비를 보채야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엄마의 성향 때문에 아빠는 영화 시간에 맞추기 위해 난폭하게 운전을 했다. 도착하면 항상 영화 시간 아슬하게 도착하거나 아예 통으로 전반부를 날렸다. 나와 아빠는 엄마를 탓했다. 엄마는 영화 그까짓 거 못 보면 어때, 누가 가쟀나(내가 같이 와준 거지) 하는 식이었다. 말해 뭐하나 싶어 아빠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영화가 끝날 즈음은 언제 기분이 상했었냐는 듯 잊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가판대에 파는 옷들을 보며 가끔 딸, 이거 너 입으면 예쁘겠다. 하며 만지작거렸다. 평소보다 살이 쪄서 됐어, 하고 시크하게 말하고 옷가게들을 지나쳤다. 가끔 불량식품 맛이 나는 떡볶이를 먹고 싶을 때 영화관 1층 길가에 크게 매대를 놓고 영업하는 집에 들렀다. 아빠가 집에 가서 먹지 뭘, 이라고 할 때 엄마는 애가 먹고싶다잖어, 하면서 성내는 아빠를 뒤로하고 매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면 아빠는 슬금슬금 곁에 앉아 떡볶이며 순대를 양껏 많이도 먹었다. 그런 아빠를 보며 엄마와 난 깔깔깔 웃곤 했다.
엄마가 죽고 처음 간 영화관. 아직 긴 호흡의 영화를 집중해서 보기엔 내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것 같다. 엄마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지배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장면들이 연결이 되지 않아 영화가 무척이나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휴대폰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시간을 봤다. 옆에서 핫도그를 베어 물고 있는 아빠를 흘끔 봤다. 아빠 역시 영화는 보는 둥 마는 둥 공허한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음식을 삼키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영화를 참 많이 보러 다녔다. 장르에 관한 한 취향이 달랐지만 가족 단합의 명목으로 "그냥" 보러 가기도 했다. 엄마가 죽은 지 두 달이 지났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같이 보러 간 건 아마 서너 달 지났을 것이다. 같은 영화관의 풍경 속에서 엄마만 사라졌다. 그걸 아는 사람도 아빠와 나뿐이다.
죽음, 그 후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한 가정의 혹독한 시련이다. 그렇다 한들 세상의 입장에서는 개인사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고 언제나 그렇듯 일상적이고 평온하게 흘러갈 뿐이다. 내가 언젠가 죽고 나서도 마찬가지겠지.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일상에서 고민해 본 적 없는 이질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계기가 된다. 대게는 죽음과 상실의 아픔에 관한 한 보다 건강한 마음가짐을 다지게 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두통을 일으킬 만큼 고통을 일게 하기도 한다.
분노의 질주 : 더 얼티메이트
요즘 최고 인기작. 형편이 형편이다 보니 봤어도 내용이 잘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아빠와 내가 한 번이라도 더 집 밖으로 나가 일상을 찾을 용기를 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영화관에 가서 엄마가 머물렀던 자리, 엄마가 했던 말들을 꾹꾹 눈도장 찍으며 슬픔에 젖은 외출을 했을 뿐이라 해도 부딪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자꾸 부딪히다 보면 부서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