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이혼"으로 협박하며 퇴원을 요구했다

#58.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by 풍선꽃언니
딸, 아빠한테 말해서 엄마 좀 퇴원시키라고 그래. 너 아빠한테 똑바로 얘기 안 하면 나 니네 아빠랑 이혼할 거야. 진짜야. 빨리 니네 아빠한테 전화해

작년 8월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신자부담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부터 나, 사위와 며느리에 이르기까지 "미친 듯이" 전화를 해서는 퇴원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전화 올 때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버텼다. 엄마에게 화도 내고 달래도 보고 해서 전화를 끓고는 다시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병실 내에 어떤 여자랑 싸웠다는데 이유는 뭔지, 남자 직원들이 엄마를 강제로 제압했다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등등


아빠가 안쓰러웠다. 집엘 가보면 엄마한테 시달려 얼굴이 까매진 아빠가 있었다. 밥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요리도 할 줄 모르니 배가 고파 과자봉지를 끌어안고 대충 씹어먹으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면도하지 않은 얼굴에 운동복을 입고 남루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몰골로 급격히 무너지는 아빠의 생활이 보였다. 게다가 엄마는 엄마가 입원하게 된 경위 자체가 아빠의 못된 계략 때문이라며 슬퍼하고 분노했다. 아빠는 매일 엄마 병문안을 가서 엄마가 좋아하는 탄산수나 초콜릿 등을 사식으로 넣어줬고 엄마는 그것들을 같은 병실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내게는 전화해 퇴원시켜 주지 않으면 아빠와 당장 이혼하겠다면서 협박을 해댔다. 다른 협박은 그런대로 들어줄만했는데 엄마가 이혼 얘기를 할 때마다 아빠가 엄마 병으로 불쌍하게 지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왜 자기 생각만 할까 야속했다. 정신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였다.


엄마의 강제입원은 막말로 아빠 혼자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직계가족 2명 이상의 서면동의가 있어야 했고 입원하더라도 엄마 본인이 원치 않으면 약물투여를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가족들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낫게 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겠는데 본인은 퇴원을 요구하면서도 치료에 "필사적으로" 비협조적이었다.


엄마는 저항의 불꽃과도 같았다. 자신을 약물로 무력화시키는 병원 의료진들에 대항해 투쟁 일기를 쓰고 세상을 향해 마구 분노했다. 가족들로서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엄마가 입원한 3주간 가족들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엄마가 너무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아빠는 결국 엄마를 퇴원시켜줬다.


우린 엄마를 사랑했는데 엄마는 우리가 엄마를 괴롭히려 한다고 믿었다는 게 말도 못하게 상처가 되었다. 정신병에 지배당한 엄마는 교활했다. 내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독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아빠가 지쳐서 엄말 포기할까 봐 두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병원에서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큰 심호흡을 하고 받은 뒤 잘 달래서 끊는 것과 주말에 아빠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주는 것뿐이었다. 한 번은 올케에게 감자와 오징어 등 그냥 두면 썩어 버릴 것 같은 식재료를 소분해서 나눠주기도 했다. 퇴원하고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역시 우리 딸" 하며 칭찬을 하기에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어제 오늘 발가락에 심 박는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자니 숨 막히고 답답했다. 입원 경험이 많지 않아서 병실 경험이 (좋지 않은 의미에서) 특별하다. 어제 낮에 남편이 십 년만 일찍 죽으면 살만하다고 떠들던 옆 침대 아주머니가 체리를 건네줬다.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좀 드셔"


얼떨결에 받아 들었지만 먹자니 좀처럼 내키지 않았다. 아빠가 와있던 김에 드시라고 종이컵째 내밀었다. 나처럼 줘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굳이 초콜릿이나 과자를 나눠줬을 엄마....


아침 07:30. 퇴원하려면 서너 시간이나 남았는데 입원실에 갇혀있는 게 싫었다. 엄마가 자꾸 떠올라 괴로웠다. 아침부터 아빠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해댔다. 아빠는 아침 아홉시 되기가 무섭게 날 퇴원시켜주었다.


입원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엄마가 떠올라서 괴롭다. 나를 협박하던 엄마가 밉다.


엄마가 날 그딴 식으로 비열하게 협박하지 않았더라면 난 엄마가 죽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엄말 입원시켰을 것이고 엄마는 병원에서 난리를 칠지언정 죽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지금 내 곁에 있었을 텐데.


아빠랑 엄마가 이혼하는 자체는 하나도 무섭지않았다.

아빠가 이혼해줄 사람도 아닐 뿐더러 엄마가 아빠를 얼마나 의지하는지 아니까.


다만, 엄마가 정말 어느날 완전히 미쳐버려서

모든 것을 팽개치고 도망갈까봐 겁이났다.


순진하고 멍청해서 엄마의 공갈협박하나 못이겨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내가 너무밉다.

매거진의 이전글상실의 아픔(엄마의 죽음)을 견디는 과정 <2개월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