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아픔(엄마의 죽음)을 견디는 과정 <2개월 차>

#57. <언제쯤 괜찮아 지나요>에 대한 경솔한 중간점검 2

by 풍선꽃언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
엄마 몫까지 내가 더 잘살고
엄마 몫까지 아빠한테
더 효도하고 살 거야

엄마가 죽은 지 꽉 채운 두 달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삶의 곳곳에서 엄마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욕실 청소를 하면서 욕실 청소하던 엄마가 보이고 요리를 하면서 야채를 다듬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가 아끼던 오래된 접시를 버릴 땐 얘가 아까운 줄 모르고 그걸 왜 버리니, 하고 화내는 엄마가 말을 걸고 엄마는 죽었잖아, 엄마 떠오르는 건 다 버릴 거야 하고 대답하는 내가 있다.


주체 못 할 만큼 슬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 때나 난감하게 툭 눈물이 쏟아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첫 한 달은 엄마가 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 하는 혼란 속에서 허둥지둥했다면 지금은 죽은 엄마와 더불어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드라마 같은데 보면 죽은 친구, 가족 등등한테 전달되지도 않을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고 한다. 그 식상한 짓을 나도 한다. 아마 상실의 아픔을 겪어본 이들은 떠난 사람의 부재에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그런 행동을 한 번쯤은 다 해봤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보이스톡을 걸어봐야 엄만 받지 않을 줄 알면서 그냥 한 번씩 걸어보고 메시지도 보내며 근황을 전한다.


까르가 헛짖음을 하면 신경이 쓰인다. 강아지는 오감이 사람보다 발달해서 초인적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하던데 혹시 엄마가 곁에 있어 짖은 것일까 봐. 까르에게 묻는다. 할머니 왔어? 그러나 그게 한심한 소리라는 것을 안다. 할머니를 본 거라면 우리 까르는 짖을 리가 없으니까. 따뜻한 엄마 무릎 위에 기대어 앉아 눈을 꼭 감고 잠을 자던 까르가 엄마를 본 거라면 짖는 게 아니라 빙글빙글 돌며 꼬리를 흔들 것이다.


가족들 모두 엄마가 없는 현재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다. 한 달 째보다 기분변화의 폭이 커진 사람은 아빠인데, 아무래도 평생의 말벗이 자라 졌으니 시간이 갈수록 허전함을 더 느끼는 것 같다. 나와 남동생은 각자의 배우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좀 더 단단한 부부가 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엄마의 부재가 괴로울 때 남편의 포옹은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특효약이다. 아빠는 배우자를 잃었기 때문에 자꾸 시간의 빈 공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루를 바쁘게 산다. 은퇴한 양반이 바쁘면 얼마나 바쁠 수 있냐고 물으면 그건 모르는 소리다.


아빠의 기본 하루 일과는,

0600 - 0730 단지 내 커뮤니티센터 운동

0900 - 1000 아침식사

1500 - 1700 강아지 산책

1800 - 2200 회식 등 모임(주 2회 이상)


그 빈 공간에는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거나 주식 등 재무관리를 한다. 주말엔 남동생이 잠시라도 찾아오고 엄마에게 가져다줄 추모 꽃다발도 직접 만든다. 상담센터는 2주에 한 번씩 다니고 있다.


아빠가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게 지금 상황에선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참 혈기 왕성해야 할 나보다 아빠는 더 많은 모임과 여행을 다니고 있다.


산 사람은 살아진다는 말이 있듯, 우리 모두는 엄마가 없다는 것만 빼면 살아오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각자의 사투가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를 의지하며 우리 가족이 엄마를 중심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던 힘의 축이 아빠에게로 옮겨져 갔을 뿐 잘 지내고 있다.


나는 아직 심리상담센터와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 엄마의 사망원인이 사고였다 보니 정신적 충격도 워낙에 컸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불안감으로 아빠의 안전에 대한 집착이 비정상적인 범주라는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두 달쯤 지나면 어떻게 지내는지 기록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다르겠고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언제쯤 심리적 평화가 다시 찾아오는지 아무도 알려주는 이가 없었고 그게 막막했다. 앞서 첫 달 어땠는지 남긴 기록을 보니 <온몸에 화상을 입고 발가벗은 채 뛰어다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기분>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그때는 정말 그랬었다. 지금은 <묵념하는 기분>이랄까. 심연의 애틋함은 여전하지만 그 강도는 잔잔하여 슬픔과 그리움 그 어딘가를 헤매는 단계 정도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서른다섯에 엄마를 잃었다. 딸은 나이가 몇 살이 돼도 엄마 손을 탄다는데 엄마 잃은 허전함은 아마도 가족 중에 내가 가장 오래도록 앓을 것 같다. 당장 아이를 낳았을 때 내 손잡아주며 산후조리방법을 알려줄 엄마가 없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태어난 이래로 혼자 임신과 출산을 겪을 거라 생각한 적이 없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빠가 예전에 너네 엄마가 이랬었던 거 같다는 둥 저랬었던 거 같다는 둥 하며 허둥지둥 내게 뭔가를 알려주려 하겠지만.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었대. 기특한 내동생

우리 가족 힘내서 잘 버텨내고 있다.

다음 달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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