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산부인과에 다녀왔습니다
#64. 남들은 남편이나 엄마랑 다니겠지.
산부인과에 오면 친정엄마가 목도 못 가누는 아이를 안고 옆에 멀뚱히 서있는 초보 엄마가 초보 아빠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차병원에 난임치료 때문에 다니기 시작한 게 5개월 쯤되는데 조리원에서 이제 막 나온 화장기 없는 얼굴의 해산한 산모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그러겠지, 그 옆에 노련한 손길로 아이 머리를 받쳐 들고 까꿍까꿍 달래고 있는 여자 어른을 우리 엄마로 그리며 살던 때가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배란일 날짜 받으러> 아빠랑 산부인과에 오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난 아빠와 8층 난임센터 옆 대기실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앉아있다.
날짜 받으러 왔는데요
아빠가 물어볼 때마다 있지도 않은 생리통 얘기를 하는 것이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빠에게 부부의 내밀한 얘기를 할 것도 아니라서 적당히 찾은 담백한 병원 내방 사유 <날짜 좀 받으려고요>.
난임센터<8층>에서 아빠와의 커피 한 잔
요즘은 공무원들도 재택근무와 유연근무가 활성화되어있다. 우리 기관의 경우는 작년 하반기 기준으로 일주일에 두 번 재택근무가 가능했다. 나는 그때마다 친정집에 와서 하루 자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나팔관 조영술>이니 <AMH검사>니 하는 난임 검사를 받으러 다녔다. 병원에 다녀와 식탁에 앉으면 엄마는 딸기잼이 많이 들어간 샌드위치나 버섯 수프를 끓여주곤 까만 눈동자로 빤히 보며 병원에서 뭐라고 했는지 물었다.
엄마는 아이를 기다렸다. 결혼하고 삼 년쯤 지났을 때부터 아이를 낳기만 하면 엄마가 다 키워주마 하며 잔뜩 기대했다. 가끔 지나가다 아이 옷이 보이면 아직 배란도 안 된 아이의 옷이며 턱받이며 사다 주곤 했다. 남편과 나는 엄마의 성의에 묘한 압박을 받았지만 각자의 삶이 바빠 가족계획은 뒷전이었다. 그러다 작년에 난임 진단을 받았다.
내가 아이를 좀 더 빨리 가졌더라면, 그래서 엄마가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더라면 엄만 조금 더 오래 내 곁에 있었을까. 아빠 말이 언제부턴가 삶의 의욕을 잃은 듯했던 엄마는 주변의 아기들을 무척이나 귀여워했다고 한다 손녀. 손자 있는 아줌마들이 부러워 어쩔 줄 몰라하며. 만 58세 밖에 안된 엄마가 왜 그렇게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건지 묻고 싶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기를 원했지만 나와 남편이 부담될까 봐 또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 엄마의 배려가 고맙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아이를 기다리기엔 엄마가 아직 젊고 예쁠 때라서 이해가 가지를 않는 것이다.
나는 초음파 대기를 하고 있다. 아빠는 코로나 예방접종을 받으러 5층으로 내려갔다. 내 진료가 다 끝날 즈음 아빠는 여느 젊은 남편들 틈에서 방금 <질 초음파를 하고 배란일을 받고 나올>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없으니까, 아빠가 엄마인 거지 뭐
아빠와의 산부인과는 어색하다. 아빠도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출산했을 때도 아빠와 남편 손을 양손에 잡고 있을 것이다. 남들은 그 자리를 친정엄마가 채우겠지만.
내 상상 속의 엄마는,
우리 딸, 고생했어. 니 새끼 낳아보니 어때 힘들지? 엄마가 너 낳을 때 이렇게 고생했는데 이제 엄마 맘 알겠어? 미역국 끓여왔으니까 먹고 싶으면 얘기해
마트에서 사재기를 했대도 믿을 만큼 과일이니 과자니 잔뜩 사다가 병실 자리에 쌓아둘 것만 같다.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