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장면이 싫다. 엄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저녁식사는 동네 중국집 배달 음식 <울면>이었다.
엄마가 계속 저러면 엄마랑 이혼해야 할 것 같아 (아빠)
- 토요일 -
남편은 MBA 개강총회를 갔고 아빠와 나는 집 근처 유명 맛집에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아빠는 엄마가 음식을 안 한 이후로 벌써 몇 번이나 이곳에 혼자 와서 막걸리 한 병에 술국을 먹었다고 했다. 아내를 두고 처량하게 혼자 와서 순대국밥 한 그릇에 술을 마시는 아저씨.
아빠는 노년에 엄마랑 해외 어디 좋은 바닷가에서 포도주 한잔을 마시고 싶었는데 엄마가 정신병이 생겨 안타깝다. 불쌍하다, 하다가도 계속 저러면 이혼해야지. 지친다, 하며 힘듦을 토로했다. 아빠는 평일 내내 엄마의 헛소리에 질려도 단단히 질려있었다. 그래도 일전에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난리 치던 것을 생각하면 두 번은 강제입원 못 시키겠다며 어쩔 줄 몰라 횡설수설했다.
나는 병원 입원은 어떻게 시켜보면 어떻겠냐 얘기하면서도 엄마의 발악이 두려워 말끝을 흐렸다. 용기가 없던 부녀는 순대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두병을 나눠마시고 엄마를 걱정했다, 화냈다 하며 토요일 저녁을 보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홈플러스에 들렀다. 엄마가 집에서 굶고 있으니 뭔가 먹을 것을 사다 주고 싶었다. 나는 평소 엄마가 좋아하던 배스킨라빈스 녹차맛 아이스크림을 살까 했는데 아빠는 뜬금없이 보름달이라는 크림빵을 집어 들었다. 슈퍼에서 몇천 원 안 하는 그 빵이 그 옛날엔 돈 있는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었다는 빵이라는데 요즘에 한 번씩 먹으면 옛날 생각이 나서 추억이 되살아 난단다. 엄마를 위해 아빤 빵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따뜻하게 한 뒤 사등분으로 잘라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엄마는 생각 없는데 음식 냄새나게 왜 여기다 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정신과 약에 취해 잠이 들었다.
내가 정 아프면 병원에 갈게 날 좀 내버려 둬 (엄마)
-일요일-
엄마는 낮에 엄마를 스트레스받게 한다는 시 초안과 각종 방송사 PD니 작가 연락처가 담겨있었던 노트를 바닥에 한 장씩 떨어뜨리며 <이겨내겠다는 의지>와 <억울함>을 호소했다. 기껏 한 장 한 장 날리더니 나에게 주우라고 하기에 나는 엄마 어깨를 밀치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정신 좀 차려. 진짜 왜 그래."
엄마의 비쩍 마른 어깨에 흠칫 놀랐지만 내가 괴로워하면 엄마가 조금은 정신이 돌아올까 싶어 과하게 화내고 짜증을 냈다. 엄마는 퀭한 눈으로 나를 쓱 쳐다보곤 읊조리듯 말했다.
"미안하다"
온몸이 쑤신다기에 안마 잘한다는 곳을 알아보았다. 엄마는 간다고 했다가 안 간다고 했다가 횡설수설했다. 예약을 했다가 취소했다가를 반복했다. 엄마는 정 아프면 병원에 갈 테니 본인을 내버려 두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빠도 평일에 내과라도 같이 갈 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지만 절망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애썼다.
아빠와 같이 까르 산책을 다녀왔다. 잽싸게 달려오는 게 귀여워서 한참을 뛰놀게 두었다. 오후 다섯 시 즈음이 넘어가자 초조해졌다. 월요일에 남편 출근을 위해 인천 집으로 돌아가야겠는데 엄마가 마음에 걸렸다. 굳이 저녁을 먹고 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약기운에 비몽사몽간에 마른 몸을 털고 일어나 반찬은 뭘 줄지, 야채는 뭘 가져갈지 물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엄마 뭐 좀 먹어야 한다고 다그쳤다. 한참을 메뉴를 쳐다보던 엄마는 나직이 "난.. 울면, 내가 사줄게. 니들 먹고 싶은 거 골라" 하고 말했다.
중국집에서 울면을 시키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그런 메뉴가 있는지 메뉴를 한번 더 확인했다. 그날따라 중국집에서 배달 실수를 했다. 고작 배달 실수인데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이 빨리 오지 않아 무척 화가 났다. 남편에게 잘 좀 챙겨달라고 짜증을 냈는데 엄마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을 가지고 둘이 싸우면 어떻게 하냐고 안타까워했다.
엄마는 건더기 없이 계란이 둥둥 뜬 울면을 호로록 마셨다. 짜기만 할 것 같은 그 집 울면을 나는 한입도 먹지 않았다. 엄마는 맛이 없다면서도 호로록호로록 국물을 마셨다. 다 먹고 나서는 너무 늦었다며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걱정을 했다. 그러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마음이 아픈 부분은 화장실 문틈으로 엄마의 마른 어깨를 보고도 안아주거나 일으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는 서있기도 힘든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양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훌쩍이고 있다고 느꼈지만 화장실 문틈으로 엄마를 엿보고 있다는 걸 불쾌하게 여길까 봐 모른 척했다. 또 한편으로는 엄마가 정상이라고 믿고 싶은 내가 괜찮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기에 엄마를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집에 오기 전에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은 바닥에 떨어진 알약을 주워달라는 것이었다. 강아지가 먹을까 봐. 도대체 이해할 수 없게도 엄마는 약봉지마다 몽땅 찢어 어떤 특정 약을 약통에 모으는 중이었고 그중에 한알을 떨어뜨렸는데 까르가 먹을까 봐 걱정되어 주워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걸 주우려고 식탁 밑으로 무릎을 굽혀 바닥을 더듬었던 게 그 주 주말의 마지막 기억이다.
"애기가 먹으면 안 되는데...."
까르를 아기라고 부르던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다.
작별인사 없는 일상의 끝에 이틀 뒤 화요일, 엄마는 죽었다.
그때부터 나는 중국음식은 안 먹는다. 짜장면만 봐도 그날의 기억이 섬세하게 떠올라 울컥, 내 안에 무언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평생 울라고 시킨 울면인지, 그 음식점 메뉴판은 엄마가 죽고 장례를 치른 그 주 주말 바로 무자비하게 구겨서 버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