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아, 엄말 사랑해줘서 정말 고마워

#68. 너에게 충분히 주어지지 못한 애도의 시간들

by 풍선꽃언니
오늘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어
어머님을 다시 못 본다는 게
짜증 나고 힘든 것 같아
우리 엄마가 죽어도 그렇겠지?


남편은 밤 열한 시 반이 넘어 귀가했다. 계열사 전배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5개월 차) 그에 비해 직급이 무거워 중책을 맡으려니 심적인 부담이 큰 요즘이다. 엄마가 죽기 두 달 전에 자리를 옮겨서 한참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 못할 때 갑자기 상을 당했다. 그래서 생긴 공백을 메우려고 남편은 늘 그렇듯 성실함을 방패로 투지를 창으로 들고 열심히 생계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요즘 들어 남편이 한 번씩 <우울하다>는 말을 한다. (단순해서) 긍정적인 사람인데 남편이 엄마가 죽고 나서부터 한 번씩 우울을 말하곤 한다.


엄마의 장례를 치른 직후부터 남편은 흔들리지 않고 출근을 했고 대학원 공부를 이어갔다. 옆에서 매일 죽고 싶다고 난리 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출근하기 괴롭다면서도 제 할 일을 알아서 꾸역꾸역 하던 남편. 그 덕에 아빠와 난 어쨌든 남편이 출근하는 것을 보면서 아침이 왔음을 알고 퇴근하는 것을 보며 하루가 갔음을 알며 평안을 찾아가고 있는 중인데, 정작 남편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해 심연의 우울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죽고부턴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나 우울해>하는 말을 할 때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정신적인 문제라는 게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보니 얼마나 아픈 건지, 도무지 그 사람 마음 밖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라서 그 아프다는 호소를 잘 못 듣고 엄마가 혼자 앓게 한 내가 죄인이 되어버렸다.


어젯밤 퇴근한 남편이 우울을 말할 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해줘야 할지부터 생각했다. 우울해, 라는 말이 더 이상 흔한 감정의 토로로 들리지 않으니 또다시 난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봐 불안해지는 것이다.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니
집에 오면 맞아주실 것 같은데
다신 만날 수 없다는 게 짜증 나고 힘들어.
갑자기 우린 두 달 만에 합가를 했고
인천에서 일산으로 이사도 왔어.
바뀐 생활에 적응을 빨리해야 하는데
회사에서는 중책을 맡고 있고
기말고사도 다가오니까 마음이 힘들어
쉬어갈 시간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우울했어. 가끔씩 이래.
그런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걱정 마

혹자는 장모님 돌아가신대 사위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냐고 하지만 남편과 엄마는 또 그 나름대로 추억이 많다. 엄마는 시어머니께 <아들보다 예쁜 사위>라며 종종 얘기하곤 했다. 그만큼 남편은 사려 깊고 엄마 얘기에 자식들보다 귀 기울이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세상에 다른 무엇과도 이 것과 바꾸지 않겠다 생각할 만큼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15년 전 그 당시 유행하던 몇백 일 챙기기 하던 시절, 남편이 그 추운 날 자기 몸보다 큰 트롬 곰인형을 친구들을 동원해 강남에서 일산으로 들고 왔던 때가 있었다. 무려 지하철을 이용해서 말이다. 엄마는 <어린 딸의 남자 친구>였던 생면부지 남의 집 자식이 춥게 여기까지 왔다며 집에 들여 스파게티를 배가 터지도록 먹여 보냈다.


남편이 갓 대리를 달았을 때였나. 남편네 회사에서 예술의 전당 뮤지컬 티켓 나왔다. 엄마에게 특별한 외출을 선물했다. 엄마는 근처에 사는 친구분과 같이 강남역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한껏 차려입은 엄마가 자신을 보고 손을 흔들 때 나와 너무 똑같은 외모에 깜짝 놀라 잠시 멍했다고 했다. 엄마는 친구분에게 남편을 소개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얘가 우리 예비사위 되는 애야" 남편은 예비 장모님이 손을 덥석 잡고 친구분에게 자꾸만 자기 자랑을 하는데 쑥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러웠지만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고 했었다.


공연을 마치고 엄마를 데려다주는 길. 엄마는 또다시 남편의 손을 잡고 그 하이톤의 목소리로 얼마나 즐거웠는지, 종알종알 얘기하다 일산 가는 급행버스가 도착하자, 고맙다 얘, 하고 홱 돌더니 버스에 올랐다. 내가 평소 버스를 타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차창 밖으로 남편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할 때 남편은 몇십 년 뒤 내가 나이 든 모습을 미리 본 것 같은 여운이 남았다고 했다.


남편은 그 후에도 엄마와 종종 통화하고 가끔 만나며 시간을 보내다 나와 결혼을 했다. 엄마와 남편의 역사도 십오 년쯤 되니 남편 역시 하루아침에 엄마가 죽었다는 그저 장모님 잃은 여느 사위 같지는 못할 테지.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어?

엄마의 부재를 아파하는 남편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남편은 심각해지려는 내게 씩 웃으며 말했다.


"응, 난 그냥 부인이 지금처럼 안아주고 사랑해주면 돼"


한편으로는 뭉클했다. 웃고 있다고 다 웃는 것이 아니다. 남편은 짐짓 초연했지만 속으로 앓고 있고 드러내지 않을 뿐 남편의 마음도 얕은 밀물과 썰물이 이는 바닷가 한편을 걷는 기분이라는 것을. 남편 속의 엄마를 확인하는 시간이 왠지 뭉클하여 침대에 누운 그의 팔에 매달려 꼭 끌어안았다.


"남편아, 내 남편이 되어줘서 고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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