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 P와의 점심식사
#74. 갈치를 구워줄 엄마는 이제 없지만
<벙커힐>이라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 있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헤이리와 같은 예술마을이 있다는 것은 일산이나 파주 주민만의 낭만이다. 오랜 벗 P와는 엄마가 죽고 격주마다 한 번씩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친구 좋다는 게 뭔지 웃으면서 사는 얘기하다 보면 엄마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기도 해서 머리가 맑아진다.
별 심오한 얘기를 하는 것도 용건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집에 입고 있던 채로 나가서 열두 시에 만나 두시에 헤어지는 만남. 그만큼 목적 없는 만남이기에 종종 대화하다 보면 서로 졸리다며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도 하는 그런 만남.
토마토 소스가 진했던 오늘의 라자냐!"다다음주엔 내가 시간이 안돼"
P가 말했다. 왜인지, 묻지 않았는데 나를 의식해서 인 듯 P는 다다음주 주말에 지방에서 올라오면 엄마 집에 간다고, 엄마가 갈치를 구워준다고 했다고 했다.
"아, 하긴 나랑 만난다고 한 달쯤 집엘 제대로 못 갔겠구나, 어머니가 갈치를 구우신다고 맛있겠네"
엄마가 집에서 생선을 굽던 뒷모습을 떠올리면서 엄마가 P 어머니가 다음 주에 P를 위해 갈치를 굽는다는 것을 같이 떠올리며 미소가 쓱 지어질 즈음, 아 우리 엄마는 죽었지. 하는 의식이 돌아와 잠시 멈칫했다.
엄마는 왜 이렇게 갑자기 떠나갔을까. 요즘 같이 날이 따뜻할 때 엄마랑 같이 오면 좋을만한 오늘의 식당에 같이 못 온다는 게 아쉽다 싶었다. P와의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낮잠을 자려고 누워 뒤척이다 며칠 전 정형외과에서 본 한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아주 연세가 많으셔서 몸을 혼자 가누지 못해 대여섯 명의 의료진이 붙어 이동식 베드로부터 다른 베드로 옮겨지고 있었다. 나는 그분을 엄마에 빗대 생각해 봤었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은 늙은 엄마를 노심초사 지켜보는 게 덜 괴로울지,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며 사는 게 덜 괴로울지
정답은 없는 것이지만 내 경우엔 이미 엄마가 죽었기 때문에 죽을 엄마를 지켜보는 게 더 괴로울 것이라는 답. 정. 너(답을 정해놓고 묻는 너) 해답을 내놓고는 그래, 어느 쪽도 엄마는 영원할 수 없지 에서 생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집에 이사 온 이후로(5.18.) 계속 흐리고 날씨가 안 좋았는데 오늘은 해가 쨍하니 나왔다. 브런치 카페에 같이 올 엄마가 없어서 속상하지만 친구 P와 있는 두 시간 동안 엄마가 없다는 것을 잠시 잊었고 이렇게 난 오늘 하루를 또 잘 보냈으니 오늘이 하나씩 모여 미래의 나는 좀 덜 아프길,
고맙다. 친구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