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남편을 낳아주셔서 감사드려요

#75. 나를 위해 기꺼이 데릴사위가 되어준 남편

by 풍선꽃언니

장례식이 다 끝나고 올 3월 말부터였으니 어느덧 친정아빠와 나의 <합가>도 채운 두 달 하고 이주일쯤 된다. 열일곱 살 때 이후로 이렇게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랑 밥 먹고, 매일 밤 잘 때 굿 나이트 인사를 하던 적이 없는데 서른다섯이 되어 결혼한 딸과의 합가는 아빠도 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하긴, 인생이 계획대로 어디 되던가. 생각하면서 쉽게 쉽게 생각하면 별 법석 떨 일도 아니지만. 이번 합가의 특이한 점은 딸이 자기 혼자 집에 기어들어온 게 아니고 남자를 하나 들여서 아빠의 데릴사위로 만들어 데리고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빠와 사위(남편)

남편으로서도 둘만의 신혼생활에서 피 한 방울 안 섞인 처의 홀아버지와 합가 하는 마당에 쉬이 적응하기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엄마의 사고가 있기 전부터 워낙 우리 부부와 친정 간에 교류가 많기도 했고, 특히 엄마가 남편을 많이 아꼈다. 그래서인지 남편도 익숙해진 우리 친정집 분위기에 고맙게도 잘 적응해 주고 있다. 합가에 대한 결정 역시 싫다거나 생각해본다거나 하는 과정이 없었다. 흔쾌히 아내인 나와 장인을 지켜주겠노라고 내가 행복하려면 장인이 괜찮아야 하니 서로가 필요한 시기에 합가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었다.


엄마가 <아들보다 예쁜 사위>로 결혼하고 지난 6년간 행복했던 것처럼 욕심 좀 보태자면 아빠에게도 서로가 <아버지보다 든든한 아버님><아들만큼 든든한 사위> 였으면 좋겠다. 그 중간에서 내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현재로선 평화롭게 공존하며 잘 살아가고 있고 고맙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 내가 사랑하는 사람 둘이 중간에 쭈구리처럼 앉은 내 옆으로 양쪽 리클라이너 소파에 발 쭉 뻗고 누워 <삼국지>를 보며 흥분하고 있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와 함께할 두 남자. 내가 열심히 보필해서 행복하게 해 줘야지. 둘도 잘해, 밥주걱은 내가 쥐고 있으니까


시어머니와 나(며느리)

불교식 제사를 지내는 시댁이 갑갑했다. 명절에 딱 두 번인데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불량 며느리. 시어머니는 엄마가 죽고 내게 유일하게 남은 믿을만한 여자 어른이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엄마를 위해 한주에 한 번씩 총 7재를 지내주셨다. 불교식 제사가 그렇게 불만이었는데 정작 엄마 일이 되고 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인 나는 이기적인 며느리가 맞다.


어머님은 사고가 터지자마자 내게 말씀하셨다


"며느리가 정신 차려야 돼, 넌 잘못되면 우리 K(남편)은 불쌍해서 어떻게 하니"


아들 걱정에 며느리는 덤이라지만 자식 사랑하는 부모 마음이 그런 거라는 걸 느꼈던 그 한마디에 난 울음이 터졌다. 남편 인생이 내게 걸렸다는 생각에 정신 똑바로 차리기도 했고.


어머님한테는 아빠를 모시기로 했다, 는 얘길 꺼내는 게 어려웠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가 결정한 이상, 또 내가 불안함에 시들어 죽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말씀드리기를


"어머님 잘 키운 아들, 저희 집에 데리고 들어가서 죄송해요"


어머님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자식이 부모를 내팽개 치면 되겠냐며 아들이 갑자기 데릴사위가 되는 이 상황을 단 한마디의 싫은 내색 없이 그러라, 고 하셨다. 어머님께는 남편이 Y(나)에게 잘해 주라며, Y가 믿을 만한 여자 어른은 엄마뿐이라고 했다며 각별히 부탁을 드렸다고 한다.


요즘 시어머니랑 연락을 자주 한다. 이모들에게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도 때문이지만 아들 때문이라도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시는 어머님의 온기가 따뜻해서 자꾸 응석 부리고 싶어 진다. 남편에게도 약속했다. 남편이 우리 집을 아껴주는 만큼 나 역시도 너희 집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어제는 어머님 생신이었다. 오후께 전화를 드려서 말씀을 드렸다. 그동안은 생신이라고 해도 자꾸 됐다고 고사하셔서 식사 한번 못했는데 이제 그러지 말자고. 어머님은 당신께 마음을 여는 내가 대견한 듯이 호탕하게 웃었고 통화내용을 남편에게 얘기했을 때 남편은 빙긋이 웃었다.


남편과 나(아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삶에는 어른들이 있다. 둘만이 알아서 잘 살아가기엔 서로에게 의지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 남편은 계산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줄 것이다. 내가 조금 기대에 못 미쳐도 날 탓하거나 미워할 사람이 아니다. 이런 남편을 낳아준 어머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은데 쑥스러워 말을 못 했다.

남편아,
난 서른다섯 해 살며 제일 잘한 건 널 만난 거 같아
함께한 십오 년의 시간 동안 한결같던 널 사랑해
너를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낳아주고 길러주신
너의 어머니께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이 자리를 빌려 얘기하고 싶단다.
요즘 회사일로 학교 공부로 많이 바쁜데
내가 잘 못 챙겨주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쓰인단다.
너는 내가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사람이란다(엄마는 이제 없으니까)
내가 힘을 낼게. 너도 내가 부족함이 많아도
지금처럼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포용해주렴
나는 널 보며 살아갈 앞으로의 날 들이
네가 날 보며 살아갈 날들보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사랑한단다. 너의 아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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