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인 남편 기 바짝 세워준 날

#85. 이사하고 기뻐하시는 어머님의 목소리

by 풍선꽃언니
며느리 덕분에
집이 너무 좋다
고마워


남편의 본가가 구월동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 신혼집 삼던 집이었는데 방금 어머님 목소리를 들으니 한껏 기분이 좋아지신 것 같다. 장남이지만 남편도 우리 형편에 도와줄 수가 없어 속으로 애먹었을 텐데 남편도 시어머니도 활기차게 이사하는 중이다.


엄마의 죽음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남편에게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엄마가 죽기 전에도 했던 생각이지만 실제로 이루어 지기까지 확실한 동기는 엄마의 죽음이 결정적이었다. 엄마는 가난하지만 인품 좋고 경험 많은 시어머니를 좋아했고 나에게 시집에 책잡히지 않게 잘하라고 항상 단속을 했다. 그때마다 결혼할 때 실가락지 하나 안해준 시집에 원망이 남아있어 입을 삐죽였지만 어머님은 엄마가 본 대로 영혼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며느리에게 아쉬운 점도 많았을 것이다. 제사 때마다 삐죽이며 앉아있고 입맛에 안 맞는다며 반찬을 깨작이는 내가. 나만 그 집에 가면 어색해지는 집안 분위기를 느꼈기에 엄마에겐 내게 말을 조심하라고 단속을 치던 남편은 명절 때 본가에 다녀올 때마다 나와 다투었다. 불편한데 어떻게 하냐고 비명 지르는 나를 달래던 남편의 속 마음이 어땠을지 알면서도 내 안의 불만들을 삭이지 못했다. 착한 며느리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그런데 오늘 이사를 시켜드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하다. 남편은 이게 다 Y(나)덕 이라며 어머님 아버님께 내게 고맙다는 얘길 꼭 하라고 했을 테지만 정작 나는 고맙고 이런 인사치레와는 별개로 오늘 같이 마음이 들뜨고 기쁜 날이 없다.


대가를 바라는 건 없지만 소소한 바람이라면 이제 친정 도움 없이 언젠가 생길 아기를 양육할 방법이 없어 어머님께 부탁을 드렸다. 노년에 하고 싶었던 게 많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하시면서도 어머님은 흔쾌히 내 자식의 양육을 돕겠다 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빨리 이사가 다 된 집에 가보고 싶다. 아니, 그전에 잔뜩 기가 살아 돌아올 남편의 얼굴을 보고 소감을 묻고 싶다. 이사시켜드리니 어떠냐고. 나는 남편이 오늘의 기억을 내가 남편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으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효도 경험으로 아로새겨 장남으로서 집을 위해서 자신이 해낸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 남편도 내가 엄마를 잃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나름의 효도로서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자살이라 믿었을 때 나는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아 처음 며칠간은 나 역시 같은자리에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엄마가 죽었다고 나도 죽는다면 우리 엄마의 생애는 누가 기억할 것이며 남편과 아빠의 인생은 얼마나 엉망이 될지를 떠올린다. 그러면 갑자기 내면에서 어떻게든 살아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차오른다. 내게 힘을 주는 두 사람에게 나의 의미를 안다. 나는 살아남아 내 몫의 인생을 누리고 채우며 악착같이 행복해질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그 시작이다.


사랑한다.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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