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3일 오전 열한 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시간. 그 시각 나는 전직시험 대비 G학원 프리패스의 행정법 강의 67강을 듣고 있었다. 강의 한 개만 더 들으면 완강이었다. 다소 들뜬 마음이 들었다. 식탁 겸 책상인 내 공부환경. 67강을 마침내 다 듣고 마지막 강의를 클릭하려던 찰나의 순간 휴대폰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휴직 중이라 급한 전화가 없을 텐데..' 이상한 느낌에 거실 소파 어딘가에 던져둔 휴대폰을 냉큼 집었다. 발신자 아빠. 주말에 오라는 얘길 하기엔 화요일 밖에 안되었는데.
"너네 엄마 뛰어내린 것 같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그 뒤로 나는 책을 놨다. 삶에 의욕도 같이 내려놨다. 강의 따위 들을 정신도 없고. 뭐야. 내가 그렇게 힘들다고 해도 직장을 바꾼다니 불안해하기만 하던 엄마는 이렇게 당신 뜻대로 나를 주저앉히는 건가. 열심히 하라고 엄마의 달력에 내 시험날은 표시해 두었으면서도 진급시험이나 준비하면 안 되는지를 은근히 타이르던 엄마. 내가 기부채납이 어쩌고 하는 행정법 판례를 공부하는 동안 엄마는 죽어 있었다. 장항 구급대가 사람 떨어진다고 신고 접수받고 출동하는데 7분 정도 걸렸다고 하니 엄마가 죽은 시간은 아홉 시 삼십 분에서 사십 분 사이. 두어 달이 지난 지금도 엄마가 끔찍한 추락을 하는 동안 차나 처마시며 강의 듣는다고 깝죽대고 있었구나 생각하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다.
엄마가 싸늘하게 식어가는동안 난 행정법 강의 67강을 듣고있었다
엄마 장례식을 마친 직후 아빠는 방황하는 나에게 뭐라도 해야 한다며 집중할 거리로 행정법을 잡을 것을 강권했다. 나도 그래야겠다 싶었다. 시험은 내가 정신 차리길 기다려 날짜가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 바쁘면 잊히겠지. 엄마가 죽었는데 나는 공부를 해보겠다고 단지 1층 카페에 내려가 하루 종일 책을 펼쳤다. 매일 책을 펼치고 엎드려 흐느끼다가 밤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한 달 정도 했다. 미칠 것 같았다. 그 사이 진도는 한 페이지도 나가지 못했다.
한 달을 그렇게 보내고 상담센터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슬프고 괴로워 집중을 하지 못해 자책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담센터 선생님은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채로 무슨 공부냐며 자신을 다그칠 때가 아니라 추스를 때라는 솔루션을 내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엄마 죽은 아픔을 공부로 승화하는 의지의 한국인이 못될까. 공부가 하기 싫어 엄마 죽음을 핑계 삼아 숨는 비겁한 인간은 아닐까 나 자신을 끝없이 비판했다.
제복 공무원으로서 법집행자로서 갖는 권한이 좋아요
정신을 천천히 차리고 있는 지금, 상담센터 선생님과 전직에 대해 다시 한번 상담받으며 경찰관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와 매료되었던 이유에 대해 의논했다. 법 집행자로서 직위상 내가 갖는 권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나, 대내적으로 수직화 된 권위의식과 원거리 근무지 발령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 고백했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정작 내가 경찰관으로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웃기게도 타인이 내가 소속된 조직에 대해 부정적인 논조로 말하자 그에 반론하고 싶은 심적 충동을 느꼈을 때였다(체제 세뇌교육의 힘인가)
상담을 여덟 번째 받을 동안 나는 상담 선생님과 그날그날의 주된 문제에 대해 하나씩 답을 찾아가는 시간들을 가져왔다. 남편에게 내 상처를 드러내는 방법이라든지, 사별한 입장의 아빠를 대하는 태도라든지. 이번에는 나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이었는데 그동안 고민하던 진로문제에 대해 상담을 통해 내가 원하는 해답을 찾았기에 머릿속이 시원했다.
결론, 나는 경찰관으로 남기로 했다.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내게 누가 시켜서 했던 전직 준비도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게 답이다. 직급이 어느 정도 차고 좀 더 우위로 올랐을 때 모습은 엄마가 기꺼이 자랑스러워할 모습일 것이다.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재정립해 보았다. 일개 말단 공무원일 지라도 나는 국가에 이바지하는 내 일에 대해 찾는 어떤 만족감이 있고 치안안전 지킴이로서의 역할에 부여하는 의미가 크다. 다만, 수직적 계급사회의 권위와 차별에 맞서는 게 여린 내 가슴에 상처가 될 수 있겠으나 나는 달라졌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만 아니면 다 괜찮다. 오늘 먹고 싶은 아메리카노는 오늘 먹고살자(죽으면 끝이니까)
휴직 기간 육 개월 남았다. 하고 싶은 거 망설임 없이 다 하고내년엔 진급해서 바뀐 계급장 들고 엄마 찾아갈게